글로벌 기업용 AI 시장 1,768억 달러 돌파…AI 에이전트가 성장 주도

글로벌 기업용 인공지능(AI) 시장이 실험과 기술 검증 단계를 넘어 대규모 상용화 국면으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기업들이 AI를 단순한 업무 보조도구가 아니라 핵심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수행하는 필수 인프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AI 투자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사람의 명령에 응답하는 생성형 AI에서 스스로 업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로 기술 활용의 중심이 이동하는 가운데, 기업용 AI 모델 시장에서는 Anthropic과 OpenAI 등 소수 사업자의 지배력이 한층 강화되는 모습이다.

미국 벤처캐피털이자 AI 산업 분석기관인 Menlo Ventures가 최근 발표한 '2026: The State of Enterprise AI'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글로벌 기업용 AI 지출 규모는 1,768억 달러로 추정됐다. 이는 2025년 약 330억 달러 대비 5.4배 증가한 규모다. 기업들이 AI 도입을 위한 신규 예산을 확대하는 동시에 기존 소프트웨어 투자 일부를 AI로 전환하면서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조사는 미국 기업의 AI 투자 의사결정자 약 4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 참여자들이 관리하는 AI 지출 규모는 40억 달러를 웃돈다. 따라서 1,768억 달러는 전 세계 기업 지출을 직접 집계한 확정 실적이 아니라 설문조사와 시장 분석을 결합한 Menlo Ventures의 추정치라고 할 수 있다.

AI 시장, 모델 개발보다 실제 활용에 더 많은 자금 투입

기업용 AI 시장의 성장에서 주목할 부분은 AI 모델 개발보다 이를 실제 업무에 활용하는 데 더 많은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Menlo Ventures는 2026년 기업의 AI 활용 및 배포 관련 지출을 1,768억 달러로 추정한 반면, AI 모델 개발 관련 지출은 1,025억 달러로 분석했다. 모델 개발에 1달러가 투입될 때 기업들이 AI를 실제 업무에 적용하는 데 약 1.7달러를 지출하는 구조다.

이는 AI 산업의 가치 창출 중심이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서 AI 애플리케이션, 추론 인프라, 업무 자동화 및 운영 서비스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기술 자체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이 실제 업무에 적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며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가 시장 성장의 핵심 변수로 부상한 것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AI 애플리케이션 시장은 약 770억 달러로 확대됐다. 이 가운데 AI 코딩 시장은 340억 달러, AI 비서 및 생산성 도구 시장은 250억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AI 코딩 분야는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서 코드 생성, 오류 수정, 테스트 및 검토 업무에 AI 활용이 확산되면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영역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기업들의 AI 투자 확대가 반드시 기존 소프트웨어 시장의 축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Menlo Ventures 조사에 따르면 2026년 증가한 AI 지출의 55%는 신규 예산에서 조달됐다. 기존 소프트웨어 예산에서 전환된 비중은 22%였으며, 이 가운데 13%포인트는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의 AI 제품으로, 9%포인트는 AI 네이티브 기업으로 이동했다.

이는 기존 기업용 소프트웨어가 AI에 의해 단기간에 전면 대체되기보다 기존 시스템에 AI 기능이 추가되면서 전체 소프트웨어 시장이 확대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다만 기존 SaaS 기업의 성장률은 둔화할 수 있어, AI가 기존 소프트웨어 시장에 성장 기회와 경쟁 압력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AI 에이전트, 전체 토큰 사용량의 80% 차지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AI 에이전트가 기업의 AI 사용량을 급격하게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생성형 AI가 사람의 질문에 답변하거나 문서 작성과 정보 검색을 지원하는 데 집중했다면, AI 에이전트는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단계의 업무를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Menlo Ventures가 AI 모델 접근 플랫폼인 OpenRouter의 사용량을 분석한 결과, 2026년 9월 기준 AI 에이전트가 전체 토큰 사용량의 약 8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이전트가 생성하는 토큰은 주당 약 130조9,000억 개에 달하며, 이는 사람이 직접 주도하는 AI 사용량의 약 7배 수준이다.

특히 2026년 2월 AI 에이전트의 토큰 사용량이 인간 주도 사용량을 추월한 이후 에이전트 트래픽은 약 37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인간 주도 사용량의 증가율은 약 5배에 그쳤다. AI의 주요 소비 주체가 사람에서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AI 에이전트 확산은 기업의 AI 비용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기존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주로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비용을 부과했지만, AI 에이전트는 사용자가 시스템을 직접 이용하지 않는 시간에도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에이전트가 동시에 작업을 진행하면서 AI 사용량이 직원 수가 아닌 실제 처리하는 업무량에 비례해 증가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의 예상 AI 지출과 실제 지출 간 격차에서도 확인된다. 조사에 참여한 기업들은 2026년 AI 지출을 전년 대비 평균 1.9배로 늘릴 계획이었지만, 실제 지출은 평균 4.7배에 달했다. 당초 예산의 약 2.5배를 지출한 셈이다. 다만 중앙값 기준 실제 지출은 전년 대비 2.2배로, 일부 대규모 이용기업이 평균을 크게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분석 관점에서 보면 AI 에이전트의 확산은 단순히 AI 모델 호출량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에이전트가 기업의 데이터베이스, 업무 애플리케이션, 클라우드 시스템과 연결되면서 실행환경, 보안, 권한관리, 모니터링 및 비용 최적화 시장까지 동반 성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Menlo Ventures 조사에서는 AI 애플리케이션 개발자의 74%가 에이전트를 활용하고 있으며, 32%는 여러 에이전트가 협업하는 멀티에이전트 구조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AI 에이전트가 일부 선도기업의 실험적 기술을 넘어 AI 애플리케이션 개발의 주요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업용 AI 모델 시장, Anthropic·OpenAI 양강 체제로 재편

AI 사용량이 급증하는 가운데 기업용 AI 모델 시장에서는 소수의 프런티어 모델 개발기업으로 지출이 집중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Menlo Ventures에 따르면 2026년 기업용 거대언어모델 API 지출에서 Anthropic과 OpenAI의 합산 점유율은 86%로 추정됐다. 이는 2025년 67%보다 19%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기업별로 보면 Anthropic의 점유율은 2025년 40%에서 2026년 55%로 15%포인트 상승하며 선두를 유지했다. OpenAI 역시 같은 기간 27%에서 31%로 점유율을 확대했다. 반면 Google은 21%에서 9%로 하락해 상위 두 기업과 격차가 벌어졌다.

Anthropic의 점유율 확대는 장시간에 걸친 복잡한 업무 수행과 소프트웨어 코딩 분야에서의 경쟁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OpenAI 역시 모델 성능 개선과 개발자 생태계 확대를 바탕으로 기업용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저렴한 AI 모델과 오픈소스 모델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음에도 기업들의 지출은 여전히 고성능 프런티어 모델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업들이 단순한 토큰 가격보다 복잡한 업무를 얼마나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AI 에이전트의 경우 한 번의 오류가 전체 업무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모델의 추론 능력과 작업 수행 안정성이 비용보다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단순한 문서 요약이나 정보 분류 업무에서는 저비용 모델이 유리하지만, 복잡한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금융·법률 업무에서는 고성능 모델의 활용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AI 모델 시장의 경쟁구도가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라 실제 업무 수행능력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픈소스 AI, 사용량은 증가하지만 지출 점유율은 하락

프런티어 모델 개발기업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것과 동시에 오픈소스 AI 모델의 사용량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Menlo Ventures 조사에 따르면 오픈소스 모델의 전체 토큰 사용량 비중은 2025년 11%에서 2026년 19%로 상승했다. 반면 지출액 기준 점유율은 같은 기간 6%에서 4%로 하락했다.

이는 오픈소스 모델의 활용이 확대되고 있지만 가격 하락 속도가 사용량 증가에 따른 매출 확대 효과를 상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오픈소스 모델의 평균 토큰 가격은 전년 대비 약 3.3배 낮아졌다.

이러한 시장구조는 향후 AI 모델 공급업체 간 경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고성능 프런티어 모델은 복잡한 추론과 자율적인 업무 수행을 중심으로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반면, 오픈소스 모델은 비용 효율성과 자체 운영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업무에서 활용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 입장에서는 하나의 모델에 모든 업무를 맡기기보다 업무의 난이도와 보안 수준, 응답속도 및 비용에 따라 복수의 모델을 선택하는 멀티모델 전략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AI 산업의 경쟁력, 모델 성능에서 업무 실행과 수익성으로 확대

Menlo Ventures의 이번 조사 결과는 글로벌 AI 시장이 세 가지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기업용 AI 시장의 본격적인 상용화다. 기업용 AI 지출이 1년 만에 5배 이상 확대된 것은 AI가 기업의 핵심 투자영역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신규 예산이 AI 지출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AI가 기존 IT 시장을 단순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AI 에이전트 중심의 소비구조 전환이다. AI의 주요 사용 주체가 사람에서 소프트웨어 에이전트로 확대되면서 기업용 AI 시장의 성장동력이 사용자 수에서 업무 처리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AI 서비스의 수익모델 역시 사용자당 과금에서 작업량·사용량·성과 기반 과금으로 다양화될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는 AI 모델 시장의 집중화와 응용 서비스 시장의 다변화다. 프런티어 모델 시장에서는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컴퓨팅 자원을 확보한 소수 기업이 경쟁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산업별 업무에 특화된 AI 애플리케이션과 에이전트 운영 서비스 분야에서는 새로운 기업의 진입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국내 AI·ICT·SW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글로벌 프런티어 모델 개발기업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쟁하기보다 제조, 금융, 공공, 의료, 유통·물류 등 산업별 업무 전문성과 데이터를 활용한 AI 서비스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아울러 기업용 AI 시장이 빠르게 확대될수록 AI 도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AI 에이전트의 실제 업무 성공률, 작업당 비용, 운영 안정성 및 투자수익률(ROI)을 정량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기업이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향후 기업용 AI 시장의 경쟁은 누가 더 많은 AI 모델을 보유하고 있느냐보다 누가 고성능 AI를 실제 기업 업무에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이를 지속가능한 수익모델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의해 좌우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