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3)- '컴퓨터 관련 산업 호황기'
1960년대 후반부터 컴퓨터 공급이 늘고 다양해지면서 전산 소모품과 액세서리를 공급하는 회사들도 컴퓨터 산업의 일축을 형성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조우니비지니스와 삼양비지네스폼, 광명돗판무어(이상 전산용지) 한일카드, 데이터미디어(이상 천공카드), 유일기업, 삼애기업(이상 프린터 리본), 바스콤(마그네틱 테이프) 등이다.
경제기획원이나 생산성본부, 육군본부, 서강대, 연세대 등은 기계를 도입하면서 일정 기간분의 소모품까지 같이 구매했다. 그러다 보니 예기치 않은 소모품이 다량으로 소요되거나 부품이 부족한 경우 활용에 어려움이 뒤따랐다. 실제로 컴퓨터를 이용하는 측에서는 컴퓨터 운영과 더불어 소모품 조달에도 신경을 쏟아야만 했다.
초기에는 IBM코리아나 CDK, 한국유니백, 파콤코리아 등 컴퓨터 메이커가 기계를 판매하면서 같이 취급했다. 그러나 소모품 취급에 따른 번거로움이 크고 운송 수단의 불편, 적기공급의 어려움 등으로 적지 않은 애로가 됐다.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 인력요원으로 컴퓨터 영업에 급급했던 외국 메이커들로서는 소모품 취급이 귀찮은 치닥거리로 여겨질 정도였다.
컴퓨터 보급이 점차 확산되자 기존 활용업체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컴퓨터 소모품 전문업체였다. 이중 제일 먼저 소모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곳이 조우니비지니스(69.9 창립)였다.
조우니비지니스는 당시 일본 소모품 취급업체인 JBF(Jyoni Business Form Company) 대리점을 개설하면서부터 영업활동에 들어갔다. KIST 전산실에 소모품을 납품하기 시작한 이후 컴퓨터 도입업체의 소모품 젖줄로써 활약하게 된다. 하지만 100%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소모품 산업은 고가의 비용 때문에 외화 낭비가 적지 않았다. 2~3년간의 소모품 비용을 합치면 기계 한 대값에 육박할 정도였다. 이에따라 70년대로 접어들면서 점차 국산화의 길을 걷게 된다.
조우니비즈니스는 70년 12월 일본에서 연속기록지 제조용 윤전기를 도입, 한국제지에서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용지를 가공 판매하며 소모품 국산화의 문을 열었다. 이어 71년 미국 로버트프로덕션사의 버스터 기계를 도입, 컴퓨터 용지를 자급자족하는 단계로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전기나 전화요금 고지서 양식 작성에 필요한 징고판(아연판) 도입이 이루어지는등 컴퓨터 소모품 산업은 초기 생경하고 미성숙된 컴퓨터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기틀을 잡아가게 된다. 이들 컴퓨터 소모품업체가 컴퓨터 산업에 큰 몫을 담당하며 한 지류를 형성했지만 초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컴퓨터가 외국 제품이니만큼 외국 메이커에 대한 신임이 두터워 국내 컴퓨터 이용자들이 국산 소모품 사용에 반기를 들고 국산품 애용에 선뜻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품질 보증이 안 된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끊임없는 계몽과 설득으로 장벽은 점차 허물어져 컴퓨터 소모품의 국산화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한편 조우니비즈니스는 73년 5월까지 80만달러 규모의 연속기록지를 일본과 홍콩에 수출하는 개가를 올린다. 70년대 초반 전세계적인 석유파동 때문에 종이 기근사태가 발생, 일본이나 선진국가에서 종이 구입에 혈안이 돼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국내 컴퓨터 보급이 낮았던 덕에 컴퓨터 용지 부족을 느끼지 않았던 시절이고 보면 그리 쾌재를 부를만한 일도 못됐다.
<사진 설명: 컴퓨터산업 호황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강좌도 활발했는데 1970년 1월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전자계산실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통신강의를 실시한다는 안내 광고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