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24)- 'MS와 한국판 알테어'
PC혁명의 발단이 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71년 인텔에 의해 처음 개발됐다. 첫 모델은 4004. 외부와 데이터를 주고받는 버스 단위가 4비트로서 현재 64비트 펜티엄 마이크로 프로세서와 단순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4004는 이후 8080, 8088 마이크로 프로세서로 이어지며 오늘에 이른다.
미국에서 8080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컴퓨터 CPU로 채택한 마이크로 컴퓨터(당시에는 PC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알테어'가 75년 MITS라는 기업에서 처음 선보였다. 알테어는 75년 한해만 2천대가 제작돼 모두 팔렸고, MITS는 이 때문에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유명기업이 됐다. 이 MITS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신으로, 빌 게이츠와 친구 에드 로버츠가 창업자였다. 마이크로 컴퓨터의 미래를 직감한 빌게이츠는 선배인 폴 알렌과 4월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 알테어에서 실행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베이직을 개발하게 된다. 75년 말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바이트숍'이라는 이름의 최초의 마이크로 컴퓨터 소매점이 등장해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컴퓨터를 일반 진열대에 전시해놓고 판매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어 76년 마이크로 컴퓨터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애플컴퓨터가 탄생해 애플I을 발표한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우즈니액이 설립한 애플은 1년만인 77년 4월에 애플II를 발표하며 대성공을 거둔다. 인텔칩의 경쟁 제품으로 모토로라가 75년 발표한 8비트 'M6800'을 탑재한 애플II와 더불어 세계는 바야흐로 마이크로 컴퓨터 시대로 돌입한 것이다. 알테어와 애플II의 마이크로 컴퓨터 열풍은 76년 이후 국내까지 몰아쳤다. 당시 애플II 가격이 포드 자동차 한 대 값에 버금갈 정도로 고가였던 만큼 일부 부유층만이 구입할 수 있었지만 확산 속도는 빠르게 전개됐다.
개발업체들의 노력도 활발해졌다. 한국판 알테어를 제작하려는 노력은 77월 7월 금성전기와 KIST가 'GS COM80A'를 공동개발함으로써 열매를 맺었다. 76년 11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금성전기측은 자금을, KIST측은 실질적인 연구개발 인력을 투입하면서 구체화됐다. 구지회(전 가인시스템 대표)와 이만재(전 숙명여대 교수), 유황빈(전 광운대 교수) 등 젊은 두뇌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들이 개발한 것은 8비트 마이크로 컴퓨터로서 인텔이 76년 발표한 8080A를 CPU로 탑재하고 있었다. 여기에 채택된 데이터 버스는 미국에서 8080용으로 설계돼 인기가 높았던 S-100 버스. 이것은 1백개의 유니버셜형 버스와 22개의 슬롯을 가지고 있었다. GS COM80A가 국내 기술진에 의해 개발됐다는 것은 바로 이 S-100 버스에 마이크로 프로세서, 기억장치 등 핵심부품과 각종 입출력장치 등을 논리적으로 배열시킨 것을 의미한다. 즉 핵심부품의 배열을 독자적으로 설계해낸 것이었다.
GS COM80A의 운영체제는 76년 미국 디지털리서치가 발표한 8080시리즈용 CP/M-80이 채택됐고, 프로그램 개발언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알테어용 베이직이 사용됐다. CP/M-80의 주요 명령어는 editor, assembler, list, sysgen, ddt, pip, basic 등으로 1981년 발표된 MS-DOS 1.0에 그대로 채용되거나 큰 영향을 미친 것들이다. 베이직은 당시까지 주력 프로그램 언어였던 포트란이나 코볼을 능가하는 고급언어로서 과학기술 및 일반사무용 애플리케이션 작성에 우수한 기능을 갖고 있던 것이었다.
77년 7월 럭키빌딩 종합전시장에서 발표된 GS COM80A는 특성에 따라 일반 사무용, 교육 및 과학기술용, 중대형 컴퓨터 단말기용, 계측제어용 등 4종류 모델로 구분됐다. 일반 사무용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와 카세트테이프 리코더를 보조기억 장치로 사용할 수 있어 관공서나 일반기업체에 설치할 수 있었다. 교육 및 과학기술용은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겨냥한 것으로 과학기술 계산을 쉽게 처리할 수 있게 했고, 중대형 컴퓨터 단말기용은 스탠드얼론 기능을 가지면서 동시에 배치터미널로도 사용할 수 있는 인텔리전트형 컴퓨터였다. 계측제어용 모델은 관련 인터페이스 장치를 부착해 공작기계나 의료기기 컨트롤러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이크로 컴퓨터에 대한 대형컴퓨터 공급업체들의 평가는 부정적인 편이었다. 마이크로 컴퓨터를 대형 컴퓨터의 경쟁자로서보다는 새로운 단위부품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이같은 업계의 인식부족과 경험미숙으로 GS COM80A는 상용화에 실패하고, 이후 마이크로 프로세서 전성시대를 예고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GS COM80A이 국내 기술진이 개발한 최초의 마이크로 컴퓨터였음에도 불구하고, 81년 발표된 삼보전자엔지니어링(삼보컴퓨터)의 'SE 8001'이 오히려 첫 마이크로 컴퓨터로 세인에게 알려져 있는 것은 상업화가 가져 온 힘 때문이다.
<사진설명: 1982년 타임지는 컴퓨터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