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26)- '4공화국의 연구소 쪼개기'

70년대 경제개발을 이끈 견인차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3차(72~76년)와 4차(77~81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경제·사회·문화 전범위를 포괄하는 수준으로 광대한 것이었다. 여기에 과학기술정책이 포함된 것은 4차때부터였고, 이를 시발로 국내 정보산업은 발전의 거보를 내딛게 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가져왔지만, 그 반대급부도 상당했다. 대외의존도 심화 및 지역간 불균형이 그것이었다. 이에따라 4차 계획은 자력성장, 사회개발 촉진, 기술혁신 및 능률향상으로 귀결됐고 이런 연유에서 과학기술 개발이 4차 계획의 핵심과제가 됐던 것이다.

4차 계획에서 과학기술 개발 전략은 크게 자체개발과 도입기술 토착화라는 두가지 방향에서 접근됐다. 이를 위해 정부가 시행한 것이 연구기관의 재정립이었다. 당시까지 거의 유일한 국책 연구기관이었던 KIST는 기초과학 연구를 비롯해 대형 국책사업 전담 기관으로 정립하는 한편 현장의 당면 연구과제는 분야별 전문 연구소를 설립해 역할을 분담한다는 것이 기본 골자였다.

이렇게 해서 KIST에서 분리 독립한 것이 한국선박연구소, 한국해양개발연구소, 한국통신기술연구소(KTRI), 지역개발연구소, 한국표준연구소, 한국화학연구소, 한국핵연료개발공단, 한국자원개발연구소, 한국기계금속시험연구소,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 한국열관리시험연구소 등이었다.

이 가운데서 컴퓨터와 전자통신, 반도체 등 전자산업과 관련된 것이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와 한국통신기술연구소(KTRI),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 등이다.

이들 3개 연구소의 출범 상황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74년 발표된 '특정연구기관 육성법'에 근거해 출범한 이들 연구소는 설립자가 모두 박정희 대통령이며 출범일 역시 76년 12월 30일로 같다. 또 이들이 출범 이후 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과학기술부문 개발을 위해 특정 연구기관으로 지정된 것은 물론이다.

KTRI는 전자교환기 도입 및 개발을 주관하기 위해 76년 KIST 부설 한국전자통신연구소(KCRI, 현재의 ETRI와 다름)라는 이름으로 발족했다. KIST 부소장이던 정만영(전 삼성반도체통신 부사장)을 부설 연구소장으로 임명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76년 12월 '특정연구기관 육성법'에 따라 특정 연구기관으로 모습을 탈바꿈한 것이 KTRI였다. 초대 소장은 정만영이 그대로 이어받고, 제1연구담당 부소장에 김종련(전 데이콤 자문위원), 제2연구담당 부소장에 안병성(전 한국정보통신연구소 기술역), 제3연구담당 부소장에 경상현(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임명되며 구조를 가다듬어 나간다.

한편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 출범은 70년대 중반 전자산업계를 주도했던 두 갈래 흐름이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시사성을 갖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정부의 전자공업 육성정책에 의한 제도적 측면이었고, 다른 하나는 KIST의 전자분야 연구진의 기술적 노력에 따른 측면에서였다.

73년 석유파동에 따라 정부는 74년 제2차 전자공업 육성책을 발표하는 한편 이 일환으로 구미 전자공업단지 조성 및 한국전자공업진흥회를 출범시킨다. 또 전자산업의 핵심으로 반도체 및 컴퓨터 분야 기술개발을 지목하고, 특정 연구기관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KIST는 부설 반도체기술개발센터와 컴퓨터국산화연구실이 정부측 의지에 부합하는 각종 연구를 벌여오던 터였다. 특히 반도체기술개발센터는 UNDP(유엔개발기금)와 같은 해외 원조기관에 연구계획서를 제출해 독자적인 자금 확보책을 마련하기까지 했다.

반도체기술개발센터의 이같은 노력이 상공부와 청와대에 수용되면서 KIET 출범으로 이어져 구미 전자공업단지에서 정식 출범했다. 출범 당시 상공부 소속에서 이후 동력자원부로 이관된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는 전기 수요의 급증에 따라 중전기 공업기반을 마련키 위한 기술이나 대규모 시험설비를 갖출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창원 기계공업단지 내에 정성계(전 서울대 교수)를 초대 소장으로 정식 출범한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는 중전기 분야에 대한 각종 시험연구를 비롯, 전기용품 품질보증 및 검증이 주요 과제였지만, 과학기술에 관한 제반 시험연구와 지원이 수반되는 것이었던 만큼 정보산업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여기서 현존하는 기관은 하나도 없다. 4공화국의 연구소 전문화 방침에 의거해 KIST에서 분리됐던 3개 연구소는 5공화국에 접어들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로 재통합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만 통합 시기에서는 각 연구소마다 차이가 있다.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와 한국통신기술연구소(KTRI)는 80년 12월 한국전기통신연구소(KETRI)로 통합되고, 여기에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가 합쳐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