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32)- '한글코드 표준화 논란'
1980년대 들어 컴퓨터 보급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던 컴퓨터 산업 인프라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수십여 종이 난립해 있던 한글코드나 키보드 자판 배열의 통일 등 컴퓨터 표준화 작업이었다.
컴퓨터 표준화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인 한글과 한자를 컴퓨터에 제대로 적용하려는 일단의 노력이기도 했다. 한글코드 통일은 기본적으로 키보드에서 한글을 입력하면, 모니터나 프린터에 그대로 출력돼 나오도록 하는 컴퓨터 부호처리 체계를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단순히 이것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워드프로세서를 비롯한 다양한 응용프로그램에서 한글로 된 데이터를 작성하거나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자료 검색이나 정렬시 가나다순 처리까지 지원하는 광범위한 것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 표준 한글코드가 처음 제정된 것은 74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KIST에서 만든 이 코드는 초·중·종성의 값을 7비트로 규정하는 '7비트 N바이트' 방식이었다. 글자 하나의 값을 통틀어 2바이트로 규정하고 있는 현행 KSC 5601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7비트 N바이트 코드는 컴퓨터 보급이 활성화되지 못한 데다, 공급사도 적은 상황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정한 것이었다. 업계나 사용자 의견을 수렴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이에따라 컴퓨터 공급사마다 아전인수격으로 제작하게 됐고, 여러 코드가 범람하게 됐다. 하지만 각 코드들은 호환성은 물론이고 한글의 과학적인 특성이 무시되면서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문제가 제기되기에 이른다. 키보드 역시 각사마다 다른 방식을 취함에 따라 혼선이 극에 달했다.
결국 과학기술처는 80년 10월 정부기관, 단체, 관련 40개 업체를 대상으로 '표준화 활용에 관한 의견조사'를 시작으로 범국가적인 사업으로 구체화했다. 표준화 작업 구상은 80년 12월 29일 정부관련 부처와 컴퓨터 관련산업체, 주요 컴퓨터 사용자, 학계, 연구계 등이 참석한 과기처 주관의 관계기관 회의에서 비롯됐다. 이 회의에서 표준화 사업 추진을 위한 컴퓨터 표준화 사업 추진협의회 구성과 표준화 시안 작성을 위한 특별연구반 설치가 합의된다.
표준화 사업의 국가적인 중요성에 따라 약 20여명의 정부 관련부서, 연구계, 산업계 인사로 구성된 추진협의회는 계획수립 및 연구반 구성, 표준화 시행에 관한 사항 등 정책 결정을 담당했다. 반면 컴퓨터 표준화사업 추진위원회측과 KIST간 연구용역 계약에 의해 출발한 특별연구반은 과학기술처 정보산업국장 최영환을 위원장으로 표준화 시안작성을 담당한다. 특히 KIST 성기수 소장과 이기식, 정왕호, 박동인 등 당시 잘나가던 KIST 연구원들이 대거 참여해 표준화사업에 대한 계획수립과 연구반 구성, 표준 시행에 관한 사항과 관련된 정책을 결정하며 최고 실무기구의 성격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특별연구반의 활동기간은 81년 5월부터 82년 1월까지 8개월. 한글 및 한자 부호와 입력장치 건반배열, 단말장치 접속규정 등을 1차 대상으로 했던 표준화 사업에서 첫 번째 과제는 시안 작성의 제반여건에 대한 기초자료 조사 착수였다. 40여개 관련 산업체를 대상으로 표준화 대상 분야에 대한 현행 규격과 기술적인 제안들을 수집하는 것이었다. 연구반이 새로운 시안을 마련할 때마다 자문회의가 이를 검토했고, 추진위원회는 자문회의의 검토 결과를 추인하는 등 신중하게 추진됐다. 구성원 대부분이 실패작으로 끝난 1974년판 한글코드 제정에 참여했던 터라 신중은 배가 됐던 것이다.
관련 산업체 회의와 연구 자문회의를 통해 설정된 표준화 작성에 관한 기본방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컴퓨터 산업의 국제화에 대비하고, 국제간의 컴퓨터 네트워크 구성에서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관련 국제 규격과 국제관례를 존중한다. 둘째, 현행 다수 기종의 사례를 참작하고, 표준적용 단계에서의 문제점을 검안하여 표준안의 성격과 적용 범위를 구체화한다. 마지막으로 표준화가 미래 기술발전에 저해 요소가 되지 않도록 미래 지향적인 측면을 배려한다.
이같은 원칙에 따라 마련된 한글코드와 한자코드 및 키보드 배열 표준시안은 81년 12월 공청회를 거쳐 82년 1월 과학기술처에 제출되고, 같은해 5월 KS표준으로 확정됐다. 하지만 키보드 배열 표준은 별 문제가 없었으나 가장 관심을 끌었던 한글코드와 한자코드는 74년판보다 더 처절한 실패작이라는 평을 얻었다. 관련 공급업체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은 것은 물론 공급업체들은 기존에 자체적으로 제작한 코드를 더욱 강화해 나감으로써 혼선의 폭은 더욱 깊어가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그 이유를 보면 한글코드의 경우 기본코드는 74년판 '7비트 N바이트' 코드를 그대로 유지한채 보조코드로 '2바이트 조합형'과 '8비트 N바이트'코드를 추가한데 불과했기 때문이다. 2바이트 조합형은 초·중·종성을 갖춘 글자 하나의 값을 16비트로 규정한 것이고, 8비트 N바이트는 초·중·종성을 구성하는 자소 하나값을 8비트로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8비트 N바이트는 7비트 N바이트처럼 종성의 홑자음 또는 겹자음에 따라 글자 하나의 값이 2바이트에서 4바이트까지 가변되는 코드체계였다.
이들은 한국IBM이나 삼보컴퓨터, 큐닉스 등 당대 최고 컴퓨터 회사들이 사용하던 한글 코드방식을 짜깁기한 것이었다. 8비트 N바이트 역시 컨트롤데이터와 스페리 등 대형 컴퓨터 공급사와 애플에서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한글 표준은 이들 3개 방식 코드를 병행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이런 연유에서 벤더들은 독자 코드체제를 고수했다. '7비트 2바이트 완성형'이나 '3바이트' 코드같이 표준체제에 포함되지 못한 코드를 사용하던 업체들 역시 시큰둥하기는 마찬가지. 특히 정부 차원에서 이들 표준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 공급사들이 굳이 추가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코드를 변경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이에따라 과기처는 결국 3년 뒤인 85년 다시 KIST에 한글코드와 한자코드를 통합하는 새로운 표준 한글코드 제정을 요청하게 된다. 표준화 실패를 실제로 인정한 셈이기도 하다.
표준화에는 실패했지만 8개월간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국가적인 관심 속에서 컴퓨터 표준화 사업이 추진됐고, 한글 처리의 중요성이 널리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는 의의를 내포하고 있다.
<사진설명: 1981년 2월 18일 과기처가 컴퓨터 표준화 작업에 착수한다고 발표한 매일경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