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42)- '정보산업 정책을 둘러싼 주무부처 주도권 다툼'

1983년 '정보산업의 해' 이후 비로소 본격화되기 시작했던 국내 IT산업은 상공부와 체신부, 과학기술처가 중심이 되어 소관업무를 맡아왔다. 소프트웨어 관련 분야는 과기처가, 하드웨어는 상공부, 이와 관련된 통신망은 체신부에서 관리하는 체제를 띠었다.

이에따라 그간 과기처에서는 소프트웨어 산업 진흥책, 관련 연구소 및 단체 지도육성, 정보산업에 대한 장기계획 수립에 수반한 정보산업육성 관계법안 수립, 행정전산망에 관련한 표준화 작업, 전산기 도입심의 등 실질적인 정보 산업분야의 주무관청으로 역할을 해 왔다.

상공부의 경우 컴퓨터 산업의 국산화 정책을 중심으로 국산기기 수요 창출을 위한 국산컴퓨터 리스비용 지원책, 전산기 수입계획확인 요령 실시, 전산망 소요기기 국산화 작업 추진 등 주로 하드웨어에 치중된 업무를 펼쳐 왔다.

이에 비해 체신부는 전기통신 업무에서 파생된 네트워크 서비스, 각종 통신산업육성, 기술개발 지원 등을 실시해 왔는데 컴퓨터 산업이 통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소관업무 역시 자연스럽게 컴퓨터 산업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체신부는 2000년대를 위한 장기계획 발표라든가 수시로 행하는 미래 정보화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며 은연중에 '국내 정보화 사회는 체신부의 주도 아래 이룩된다'는 이미지를 심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일대 변동 기류가 형성된다. 85년 2월 18일 단행된 대폭적인 내각 개편에서 과기처와 체신부 장관이 경질된 것이다. 금진호 상공부 장관만 유임된채 과기처 장관에는 육사 11기 출신의 김성진 체신부 장관, 체신부 장관에는 이자헌 민정당 의원이 기용되면서 정보산업 주무부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직 독자 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 정보산업 주도권을 놓고 정책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정보산업의 주역에 대해 체신부의 위상을 누누히 강조해 오던 체신부 장관이 과기처 장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상황은 아이러니컬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2월 18일 개각을 둘러싼 부처별 경쟁은 새해 업무보고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각 부처들은 2~3년내 본격 추진될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의 주도권을 의식해서인지 요란한 정보산업 육성 계획들을 쏟아놓는다.

상공부는 2월 19일 '1985년 컴퓨터산업 육성계획'을 발표하며 포문을 열었다. 주요기기 및 부품의 국산개발, 국산 컴퓨터 개발여건 조성, 컴퓨터를 수출 산업으로 발전, 컴퓨터 이용 기술의 개발 확대, 지원 행정 개선 등을 포함한 컴퓨터산업 육성계획은 컴퓨터 국산화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산업화를 시도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의의를 높게 샀다.

상공부가 컴퓨터 육성계획을 발표하자 1주일 뒤 과기처가 '정보산업 집중 육성 10개년 계획'을 내놓는다. 이 계획은 과기처가 84년부터 준비해 오던 정보산업에 대한 중장기 마스터 플랜이긴 했지만 '기술 주도의 경제사회 발전 계획을 적극 펼쳐가겠다'는 김성진 장관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정보산업 집중 육성 10개년 계획은 95년까지 국내 정보산업을 국민총생산의 25%, 수출 비중에서 20%까지 끌어올리고, 전국 규모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전제로 전국민의 30% 이상이 가정용 컴퓨터 단말기를 사용할 수 있게 육성하겠다는 것이 기본 골자였다. 이를 위해 매년 16억원을 투입, 10년간 관련 전문인력으로 박사 4백명, 석사 2천명을 양성하며 관련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체신부 역시 이에 뒤질세라 85년 업무보고에서 국가기간전산망 구성을 비롯, 초고밀도 직접회로(VLSI)와 32비트 컴퓨터 개발 및 전문기술인력 양성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산업 육성계획을 제안했다. 체신부는 85년 3월 출범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를 통해 이같은 계획을 추진, 국가기간전산망 사업 추진 주체로 유리한 입장에 서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 계획들은 내용의 표현 방식이나 각론에서만 차이가 있을뿐 지향점이나 목적은 대동소이한 것이었다. 다만 이들 산업육성 정책들은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을 계기로 발전 단계에 들어서는 컴퓨터 산업 분야가 다각도의 실험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운명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었다.

각 부처별 정보산업 육성정책으로 한껏 불이 당겨진 경쟁은 8월 기구개편으로 이어지며 체신부의 위상이 강화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사실 상공부는 상공부 기획관리실장, 국보위 상공분과위원장, 5공화국 출범 상공부 차관 경력을 가진 금진호 장관의 유임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였다. 과기처는 기구개편설과 함께 새로운 장관을 맞아 변혁 조짐이 있던 것과는 달리 체신부는 비교적 안정된 분위기에서 신임 장관의 부임에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이 때문에 항간에는 신임 과기처 장관의 체신부 시절의 소신이 변함없다는 설과 함께 과기처의 정보산업 업무 기능이 대폭 축소되어 체신부 쪽으로 이관될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이러한 설을 뒷받침하듯 체신부는 정보산업을 전담할 '정보통신국' 신설을 추진됐고, 과기처 역시 대대적인 기구 개편작업이 진행된다. 결국 과기처는 8월 26일 정보산업기술국을 실 단위로 개편하고, 기존 정보산업과를 정보산업기술담당관 제도로 바꾸고 인사이동 조치를 취하는 등 과기처는 기초과학기술 및 기술정책면에 치중할 것임을 알렸다. 즉 기존 정보산업 관련 업무가 정보산업 기술 담당관에 의해 계속 수행하게 됐지만 실질적으로는 기구가 축소된 것이다.

체신부는 새로운 국 설치는 정부의 행정기구 축소화 시책에 역행된다는 차원에서 총무처 승인을 얻지 못해 무산되지만 경제사회발전 6차 5개년계획중 정보산업분야의 계획을 과기처가 아닌 체신부가 맡게 됨으로써 체신부의 입지가 굳어지는 전기를 마련한다.

이외 체신부가 정보산업의 주무부서로 확실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한 여지는 많다. 민정당의 의원입법으로 추진된 '정보화 사회기반 조성법안'이 난항 속에서도 통과된데 이어 과기처 산하 과학기술원 부설 시스템공학센터가 체신부 산하로 이관되는 등 체신부가 정보산업계 큰 손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