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43)- '전산망 촉진법(정보통신망법)' 시행

범 정부 차원에서 정보 인프라로 국가기간전산망을 구축하려는 계획이 87년 1월 1일 본격 시행되면서 국내 정보통신산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행정전산망·금융전산망·교육연구전산망·국방망·공안망 등 5대 전산망 추진 계획은 1982년부터 4년여에 걸친 준비기간을 거쳐 86년 12월 31일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전산망 촉진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이로써 5대 전산망은 제5공화국의 역사적인 산물로 태동나게 된다.

이 사업은 컴퓨터 수요를 창출하고 체계적인 정보산업 육성정책이 절실하던 당시의 시대적인 요구와 맞물린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국가적인 전산 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아무도 법안이 통과되리라 장담하지 못했던 도박적인 요소들이 많았던 것도 이 법안이 유명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계획 입안이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의혹이 많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배경에서, 그리고 어떤 연유에서 마련됐든 5대 전산망 사업이 국내 정보산업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85년 가을 문턱에 들어서면서 정기국회를 타겟으로 한 각 부처의 정보산업 관련 신규 법안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부처별 각축이 가열화되는 속에서 국무회의가 의결한 '과학기술혁신기본법'과 '공업발전법', 집권 여당인 민정당이 제출한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상정돼 있었다. 과학기술혁신기본법은 과학기술처에서, 공업발전법은 상공부가 제안한 것으로, 이 두 법안은 행정부처간 꾸준한 협의 과정에서 특정산업에 대한 육성책이 아니었기에 큰 무리없이 마무리됐다.

그런데 문제는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이었다. 민정당의 이 법안은 체신부가 마련하려 했던 가칭 '정보화사회기반조성법'이 전신이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처음부터 체신부의 정보산업 독점 관리화로 해석되면서 관계 부처의 강력한 저지를 받았다. 이에 민정당이 내용은 그대로 수용하되 이름만 탈바꿈해 여당의 법안으로 확정한 것이었기에 논란의 소지를 안고 출발했던 것은 당연하다.

처음 '정보화사회기반조성법안'은 정보산업 분야에 대한 자율과 규제를 혼합한 것으로, 그간 별다른 시책 없이 방만하게 유지되어 온 상황을 정부가 적극 개입해 주도적인 수요 창출로 업계를 활성화시켜 보고자 하는 적극적인 방안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전기통신사업자의 전산망 사업 참여, 전산망 소요기기와 기술 국산화, 호환성 확보를 위한 표준화 사업과 전문인력 양성 등이 명시돼 있었다.

이에 대한 관련 부처의 반응 역시 재미있다. 상공부는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반면 과기처는 어중간한 입장을 취한다. 과기처의 공식적인 입장은 어느정도 정보산업에 관한 부분을 체신부쪽으로 밀어주게 돼 있지만 실무자선에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체신부에서 과기처로 자리를 옮긴 김성진 장관이 체신부 재직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체신부 주도론'을 펼쳐 온 것이 주효했다. 이 법안과 관련해서는 일정 부분에 대해 체신부 쪽을 밀어준다는 것이 김 장관의 공식 입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실무진 입장은 과기처에서 그간 맡아왔고, 이후에도 주도권을 쥐고 싶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한 문제나 첨단기술 개발에까지 체신부가 손을 뻗쳐오면서 반대를 표명하게 됐다.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여당 안으로 확정하기 위한 공청회에는 이런 단면이 그대로 노출됐다. 패널회의 참석자 가운데 상공부와 전자공업진흥회측 인사들은 신랄한 반대의견을 표출한 것과 달리 과기처는 온건한 반대의견밖에 피력할 수 없었다. 일설에 의하면 과기처쪽이 상공부측에 못다한 얘기를 대신해 줄 것을 부탁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타부처에서 체신부의 이 분야 육성책 추진을 적극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상공부는 이 법안에 대해 '우리나라 경제정책에 전면 배치되는 조항이 많다'고 일침을 가하며 경제감각이 부족한 탓이었을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정부의 대외무역 자율화 시책에 따라 특정 산업만을 육성할 수 없는 것이 기본방향이고, 또 정부주도 경제가 민간 주도로 옮겨가는 시대에 정부가 특정산업인 정보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이 안은 시류에 맞지 않다는 것이 상공부측 주장이었다. 특히 미국의 강력한 보호무역 조치인 '84 통상법 301조에 불공정 무역행위에 적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견해를 비쳤다.

정보화사회의 실현이란 모든 사회가 다 같이 흘러가야 되는 것으로, 어느 한 개 부처가 정보화 사회를 주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 법안을 반대하는 타부처의 주요 의견이었다.

이에 대해 체신부는 '제도나 법규가 부처마다 상치되는 것이 많아 사업자들이 불편을 겪어 왔다. 전산망 사업에서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호환성 부분에 혼선이 초래된다면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큰 손실이다. 체신부는 대민 서비스 정신으로 다듬어져온 기관이기에 타부처보다 자신있게 추진할 수 있다'며 체신부의 서비스 정신에 입각한 근본체질과 연결시켜 애교있는 논리로 응수했다.

결국 이 논란많던 '정보화사회기반조성법안'은 20일이 지나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안'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이듬해 5월 국회 통과가 매듭지어진다. 그러나 타부처에서 문제 조항으로 지적한 사항들, 즉 기금문제와 사업자등록, 등록취소, 사업 제한, 국내 개발 기술보호, 외국인 규제조항 등은 모두 삭제돼 있었다. 이렇게 정보산업에 대한 강력한 제어기능을 가진 조항들이 삭제됨으로써 특징없는 법안이 됐다는 비난이 일었던 것이 사실이다.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안은 타부처가 지적했던 대로 이후 여러 번의 시행령 개정을 맞으며 적지 않은 문제들이 노출되지만 국내 정보인프라의 중요한 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후 법은 1986년에 제정되었으며, 현재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사진 설명: 정보화 사회 기본법 제정을 둘러싸고 정부부처 및 업계 이견으로 갈등 중이라는 매일경제 1985년 10월 26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