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46)- 소프트웨어 보호 법제화

컴퓨터 출현 당시만 해도 하드웨어 보급을 뒷받침하는 부속물 정도로 취급되었던 소프트웨어가 80년대 후반들어 정보산업의 주류로 형성되기 시작한다. 87년 7월 1일부터 프로그램보호법 시행에 이어 12월 소프트웨어개발촉진법이 제정되면서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하려는 범정부적인 노력이 가시화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소프트웨어 보호의 법제화에 대한 공식 논의가 시작된 것은 83년 9월이다. 국내 정보산업 관련 분야를 적극적으로 육성 지원하기 위해 과학기술처가 추진하였던 '정보산업육성법안' 마련 작업에서 비롯된다. 이후 정보산업육성법안은 관장 업무의 범위조정 문제로 84년 2월 '정보처리산업육성법'으로 명칭을 바꾸는데, 역시 이 법률시안에도 소프트웨어 개발권 보호 문제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부처간 의견 대립으로 소프트웨어 보호에 관한 문제는 법제화되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드디어 87년 7월 1일부터 프로그램보호법이 시행되기에 이른다. 미국을 비롯한 기술선진국의 지적소유권 마찰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많았지만 장기적인 차원에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저작권을 보호받아야 하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소프트웨어 업체가 공들여 개발한 프로그램이 쉽게 복사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중복투자가 이루어짐으로써 국가적인 손실은 물론 개발자 권익이 상실돼 개발 의욕이 떨어진 다는 논리가 팽배했던 때문이다.

프로그램보호법이 실시되면서 국산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등록을 신청하기 시작한다. 발표 2개월만에 과기처에 등록을 마친 프로그램은 3개 업체 5본이고, 등록 신청중인 것까지 합하면 5개 업체 7본에 달했다. 가장 먼저 등록한 프로그램은 9월 1일자로 등록한 삼성종합건설의 'Site Management System'. 삼성에 이어 같은달 5일 선아전자공업이 'GOINDOL'이라는 오락용 프로그램을 개발, 등록을 마침으로써 전자오락기기 업체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복제의 온상이던 전자오락기기 업체들은 일본 어뮤즈머신공업협회로부터 경고장을 받는 등 긴장이 고조돼 왔는데, 선아전자의 프로그램 개발을 시발로 많은 업체들이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개발, 등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보호법의 발효에 따른 국내 관련 산업계의 충격을 완화하고, 국제적으로 열위에 있는 국내 소프트웨어 기술수준을 조속히 향상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외산 소프트웨어만이 국내에서 기지개를 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따라 정부는 87년 12월 4일 법률 제3984호로 소프트웨어개발촉진법을 제정하고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 조성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관계 부처에서는 미국과의 법안 협상과정에서 프로그램 권리 보호에 대해서만 논의됐다는 이유를 들어 육성 근거조항만 두고, 다른 육성조항은 국회가 산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자연스럽게 보강하면 무관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경제과학위원회 법안 심의 소위원회에서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에 육성 조항을 보강하는 방안을 검토하던중 대폭적인 법조문 변경은 301조 타결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고, 법 체제상 권리보호와 육성을 통합하기보다는 차라리 분리, 별도 입법으로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아예 새로운 법제로 제정하게 됐다.

소프트웨어개발촉진법 기본 계획안을 보면 △소프트웨어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세계 5위권 소프트웨어 선진기술국 진입 및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단지 조성 △각종 지원제도 대폭 수용 △소프트웨어 진흥협의회 구성 및 운영 등이 포함돼 있다.

일부 단행법에서도 소관분야에 대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 산업을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육성지원할 법적 장치가 없었다. 소프트웨어개발촉진법은 전세계적으로 매년 15% 이상의 고속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국내 입지를 확대하기 위한 육성 방안이 제도적으로 마련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아직까지 단순 하드웨어의 보조적인 수단에서 소프트웨어를 인식하는 경향은 계속되고 있지만 당시 소프트웨어개발촉진법 제정을 계기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위한 일대 전기가 된 것은 물론이다. 또한 소프트웨어가 독립된 산업으로서 정부의 전략적인 수출주력분야로 육성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세계 유수의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국내 진출은 물론 대형자본의 소프트웨어 시장 진입 계기와 맞물려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은 일대 성장기를 맞게 된다.

<사진설명: 프로그래보호법 시행이후 전자게임용 SW 개발이 급증했다는 1988년 7월 2일, 매일경제신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