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44)- '국가기간전산망 사업 추진'
국가기간전산망은 국내 전산수요와 정보산업 육성을 연계시켜 국가적 차원에서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앞으로 다가올 정보화 시대에서의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당위성을 갖고 구상된 계획이다.
이 망에 대한 구상은 제5공화국 출범 당시부터 시작돼온 것이지만, 실제 정책에 반영되어 계획된 것은 1983년 3월에 있은 정보산업 육성방안 보고에서였다. 이 보고에서 정보산업의 효율적 육성을 위해 '정보산업육성위원회'를 구성하고, 공공기관전산망을 국방·정보·기타 등으로 통합 운영할 것임을 밝힘으로써 처음으로 국가기간전산망의 태동을 위한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7월 비로소 '국가기간전산망 계획 구성안'에 대한 보고가 있고, 10월 이 안에 대해 2백여 기관과 전문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다. 이를 토대로 12월 '국가기간전산망 계획'으로 정보산업육성위원회가 청와대에 보고하게 된다. 여기에서 국가기간전산망은 업무관련성들을 감안하여 행정망과 금융망, 교육 연구망, 국방망, 공안망의 5개망으로 확정됐다. 각 기관은 컴퓨터 이용자로서 소관업무 개선에 중점을 두는 한편 컴퓨터 운영과 같은 기술사항은 전산 전문기관이 책임 지원토록 규정했다.
이듬해인 84년 3월 정보산업육성위원회는 기술진흥심의회에 흡수되고, 새로이 전산망 사업추진을 위해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각 소관부처 차관 및 수석을 위원으로 하는 '국가기간전산망 조정위원회'가 구성된다. 이어 85년 5월 이 조정위원회가 '국가기간전산망 중간보고 및 행정전산망추진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하며 세부 지침이 마련된다.
87년부터 본격적으로 착수된 국가기간전산망사업의 직접적인 단서가 된 이 계획안에는 각 전산망에 대한 망별 사업 목표와 추진사항, 전담기관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이후 이 계획은 여러 번의 보완을 거쳐 현재는 원형을 거의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5대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의 필요성을 대내외에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이 보고에서 행정망과 금융망은 관련기관이 다수이며 이질적 사항이 많아 청와대(국가기간전산망 조정위원회)에서 조정, 지원하는 한편 교육연구망이나 국방망, 공안망은 관련 기관이 자체적으로 협의 추진하되 문제 발생시 청와대에서 지원토록 했다. 이에따라 행정망은 총무처를 창구로 한 관계 부처 협의기구가, 금융망은 금융기관 협의기구인 금융전산위원회가, 교육연구망은 과학기술처 장관과 문교부 장관이, 국방망은 국방부 장관, 공안망은 안기부(현 국가정보원), 치안본부 등 관련기관의 협의기구가 각각 책임을 지기로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부부처나 산하 관련 기관의 반발이 거셌다. 행정전산망과 금융망을 정부에서 직접 관할하며 조정하겠다는 것 때문이었다. 특히 5공화국 정치 체제의 특성상, 강압적인 스타일로 밀어붙일 것이 뻔했던 때문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행정전산망의 비중과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은 분명했다. 실제로 '국가기간전산망 중간보고 및 행정전산망 추진계획'에는 보고서 명칭에도 나타나듯 행정전산망이 명구화돼 있는데 이는 5대 전산망의 비중을 동등하게 다루던 이전 문건과는 달라진 것이었다. 이는 행정전산망이 다른 망들에 비해 규모면이나 전산화에 대한 상징적인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행정전산망은 망을 구축하는데 소요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및 통신망에 대한 표준규격과도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었다. 즉 행정전산망 사업에는 엄청난 규모의 장비와 소프트웨어 개발이 요구되기 때문에 국내 정보산업의 발전과 퇴보를 좌우하는 중요한 기로가 되는 것이었다. 더욱이 다른 전산망들이 결국에는 행정전산망과 통합, 운영되기 때문에 행정전산망에서 정해진 각종 표준은 나머지 전산망에도 그대로 적용될 판이었다. 실제로 행정전산망이 87년 가장 먼저 시행됐으며, 나머지 4개 전산망은 88년부터 2년간 준비기간을 거쳐 1990년부터 본격적인 착수에 들어간다.
당초 국가기간전산망 계획은 90년대 중반까지 완성하여 2000년까지 이들을 연결, 단일 종합 전산망으로 통합 운영한다는 장기 계획 아래 출발했다. 하지만 행정전산망을 비롯한 국가기간전산망은 여전히 삐걱대고 있다. 5공 정권의 안보나 정통성 확보 차원에서 시작된 정치적 산물이라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필요한 사무기기 구입과 같은 행정전산망 사업 추진에 소요되는 자금 부문에 있어서는 명확한 선을 긋지 않은 때문이다.
실제로 행정전산망의 목표에도 명시돼 있듯 국내 정보산업의 육성을 위해 행정전산망에 관련한 가능한 부분에서의 모든 일들을 유래없이 민간업체에게 대거 개방할 계획이었던 터라 이 계획에 대한 일거수 일투족의 반향이 민감하게 관련 업계에 긴 파장을 남겼다. 업계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역시 하드웨어의 국산화 개발 방침과 소프트웨어 수주 개발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총예산 소요자금으로 책정된 7,600억원은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더욱이 이 액수만큼 컴퓨터가 도입되고 소프트웨어가 개발될 경우 파급효과나 연계 수요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구체적인 규격이나 개발방법같은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지 않았던 터라 기업들의 심정은 답답하기만 한 상황이었다. 전담기관으로 지정된 한국데이타통신 관계자들만 기업의 집중적인 로비 대상이 될 따름이었다. 이 때부터 국가기간전산망은 처음부터 문제의 소지를 안고 출발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사진설명: 정부가 5차 5개년 계획에 맞춰 수립한 국가기간전산망 관련 기사, 경향신문 1983년 1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