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AI 시장 정보 전문기업 100여개, 반면 국내는 5개 미만...시장왜곡 및 정보종속 우려 커져

바야흐로 인공지능은 이제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 독자 AI 모델 개발, AI 반도체 육성 등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간과하는 게 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 개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술을 바라보고 평가하며 시장의 방향을 제시하는 '정보' 역시 중요한 국가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이러한 측면은 종종 '하잘것 없는 경우'로 치부받는다.

미국에는 Gartner, IDC, Forrester와 같은 글로벌 ICT 전문 리서치 기업들이 존재한다. 대략 70~100여개 기업들이 AI와 ICT 분야만을 대상으로 전문 정보를 제공한다. 이들은 단순히 시장 규모를 조사하는 기관이 아니다. AI와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반도체, 통신 등 ICT 전 분야에 대한 시장 전망을 제시하고, 기술 트렌드를 분석하며, 기업과 정부의 투자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정보 인프라 역할을 수행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AI와 ICT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이를 전문적으로 조사·분석하는 민간 리서치 기업은 매우 제한적이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들이 정책 연구를 수행하고, 일부 민간 기업이 시장조사를 제공하고 있지만, 글로벌 리서치 기업처럼 지속적으로 시장 데이터를 축적하고 기업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전문 정보 생태계는 아직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

일단 규모면에서 비교해 보자. 포레스터리서치에 따르면 미국의 AI 시장 규모는 2026년 기준 1,073억 달러이다. 한국 시장 규모는 159억 달러로,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대략 7배 정도 시장이 크다.

시장규모가 1/7임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다루는 기업규모는 미국 기업에 비할 바가 못된다. 대표적인 IT 리서치 기업인 Gartner는 연매출 약 65억 달러(9조 5천억원), 직원 2만 명이 넘는 세계 최대 ICT 리서치 기업이다. 이에비해 국내에서 AI와 ICT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의 매출은 100억 원이 채 안된다. 전체 시장규모는 1/7이지만, 대표 기업의 외형만 놓고 보면, 1/950 정도에 불과하다. 나름 영향력을 행사는 미국의 리서치 기업이 100여개인데 비해 국내는 5~6개 사에 불과하다.

이는 단순히 시장조사 기업의 숫자가 적다는 문제가 아니다. 국내 시장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기준 자체를 해외 정보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시장은 숫자로 움직인다. 투자자는 시장 규모를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고, 기업은 성장률을 근거로 사업 전략을 수립하며, 정부는 산업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책 우선순위를 정한다. 이 과정에서 국내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기관이 부족하면 자연스럽게 Gartner, IDC 등 해외 리서치 기업의 자료가 사실상의 기준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글로벌 리서치 기업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이들의 분석은 국제 비교와 글로벌 동향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글로벌 기준은 국가별 산업 구조와 기업 생태계를 모두 동일한 수준으로 반영하기 어렵다. 한국 시장 특유의 산업 구조, 중견·중소기업 생태계, 공공시장 특성, 국내 기업의 성장 과정 등은 상대적으로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 기업과 기술의 경쟁력이 해외 기준에 의해 평가되고, 국내 시장의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정보가 정책과 투자의 출발점이 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이는 의도적인 왜곡이라기보다 국내 데이터를 생산하는 주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되는 구조적 한계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이 글로벌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으로 다뤄질 경우 시장의 관심과 투자 기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AI 시대에는 반도체와 GPU만이 인프라가 아니다. 시장 정보 역시 산업 인프라다. 데이터를 생산하는 기관이 많을수록 시장은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되고, 기업과 투자자는 보다 균형 잡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만큼 시장을 분석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는 기업도 산업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인 이유다.

미국이 세계 AI 산업을 선도하는 이유는 뛰어난 기술기업만 보유했기 때문이 아니다. 기술을 평가하는 애널리스트 기업, 시장 데이터를 생산하는 리서치 기업, 산업을 분석하는 컨설팅 기업이 함께 성장하면서 하나의 정보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 생태계는 기술 혁신을 촉진하고, 기업 투자와 정책 결정의 신뢰도를 높이는 기반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AI와 ICT 산업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면 기술기업뿐 아니라 시장 정보를 생산하는 민간 전문기업도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국내 시장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AI와 소프트웨어 산업을 지속적으로 분석하며, 글로벌 수준의 시장 전망과 산업 보고서를 제공하는 기업이 늘어날수록 우리 산업의 정보 자립도 역시 높아질 것이다.

기술 주권을 이야기하면서 정보 주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누가 더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느냐뿐 아니라, 누가 시장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설명하며 미래를 제시하느냐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한국 AI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도체와 모델 개발에 대한 투자와 함께, 국내 산업을 객관적이고 지속적으로 분석하는 전문 정보 생태계를 구축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기술 경쟁력을 넘어 시장 경쟁력과 정보 경쟁력까지 확보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