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전자계산기 도입'

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전자계산기 도입'

KRG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토인비는 말했다.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IT산업은 어느날 갑자기 이만큼 성장한 게 아니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선구자들이 그들의 영혼을 투자한 결과물들이 누적된 것이다. 수많은 밤을 세우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해외 현지에서 고생하면서 쌓아온 결과물들이 바로 오늘날 한국의 IT산업 역사를 세우는 초석이 됐다.

초창기 단순 컴퓨터 도입에서 이제는 인공지능의 시대로 거듭 진화를 하고 있는 한국 IT산업은 그동안 수많은 인재들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무수한 땀과 노력을 기울였다. 외산 컴퓨터를 국내에 들여온 초창기부터 순수 국산화로 만들어진 컴퓨터 장비, 1980년대 소프트웨어 개발 붐, 1990년대 인터넷 붐과 2000년대 모바일, 스마트폰 혁명, 그리고 지금 AI 혁명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가치가 있다.

KRG는 국내 IT산업의 초창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가운데 100대 이벤트를 선정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처음 컴퓨터를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그 역사를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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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t 1. 전자계산기 도입

1960년대 초반 마셜 맥루한의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서구사회에 전자미디어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며 '정보화 사회'라는 개념인식의 문을 열때까지도 우리나라의 전자공업은 일천한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1958년 전기용 라디오의 국산화에 성공하고, 59년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겨우 고개를 내밀었을 뿐이다. 이때는 라디오 등 생활용품에 관심이 집중되었으며 장래 전자산업의 핵심인 컴퓨터 분야에 있어서는 깜깜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국력신장의 핵심이 미래 지향의 전자산업이라는데 미치면서 국가정책의 저변에는 어렴풋한 비전으로나마 전자산업의 범주에 포함돼 있는 컴퓨터에 대한 의지가 꿈틀거리며 발흥하기 시작했다. 전자공업이 근본적으로 과학 기반의 결실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정부 관료들은 경제개발계획을 비롯한 다양한 정책들에 과학을 포함시키는가 하면,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직접 과학정책을 구상 또는 입안하고 나섰다.

1966년 과학 입국을 향한 실천적 의지가 공식적인 정책을 통해 연달아 나오기에 이른다.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 과학기술연구소 발족 및 기공, 과학관 건립을 위한 한미협의회 개최,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결성 등이 그것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초기 컴퓨터 도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과학'에 대한 인지도를 넓히는데 강렬한 촉매 구실을 담당한 것은 획기적인 진전의 발로였다.

정부가 발표한 첫 과학기술정책은 1966년 경제기획원이 마련한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이었다. 정부는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창설 및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결성을 유도하며 과학기술 발전과 진흥에 대한 정책을 본격적으로 입안하고 시행에 나섰다. 특히 과학기술연구소 착공과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안은 컴퓨터에 대한 정책이나 국가적 견지에서 관심이 표명된 것으로, 이후 1967년 1월 16일 법률 제1864호로 제정된 과학기술진흥법의 모태가 됐다.

1965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의 미국 방문 시 존슨 대통령과 한·미 양국 정부 지원 아래 설립키로 합의한 KIST는 자율적인 비영리기관으로 66년 2월 10일 발족했다. KIST는 국내 산업발전을 위한 연구조사 기관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해외에 있는 유능한 과학자들이 고국에서 활동할 기틀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6월에는 미국 바텔연구소와 기술용역을 체결했고, 10월 6일 서울 시내 홍릉 임업시험장에서 기공식을 가졌다.

여기에 소속된 30개의 독립된 연구소 가운데 하나인 전자계산실은 1969년 10월 23일 준공된 후 우리나라 컴퓨터 산업의 핵심적 모체가 될뿐 아니라, 발전의 견인차로서도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발족은 국내 정보산업 흐름에 있어서 획기적인 분수령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미래를 향한 굳건한 도약대였다.

한편 경제기획원에서 마련한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안은 형식상으로는 1966년으로 끝나는 제1차 5개년 계획에 이은 것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입안한 장기 과학기술진흥안이었다.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안은 우리나라 인적 자원과 자연자원을 국가적 규모에서 기획, 활용하자는 데서 출발했다. 인력개발, 연구개발, 기술협력과 도입, 이를 뒷받침할 정책수단과 투자계획 등이 주요 골자였던 이 안은 당시 책정된 예산만도 416억6000만원에 달했다. 여기에는 11개 산업기술부문과 6개 기초과학 부문별로 당시 수준과 문제점을 밝히고, 5년간 달성 목표가 제시돼 있었다.

이 안의 구체적인 모습인 과학기술진흥법안에는 전자계산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항목이 들어 있다.

"제10조의 2(과학기술정보)항. 과학기술처 장관은 다음 각 호의 사항에 관한 계획과 시책을 수립한다.

1. 과학기술 정보기관 육성에 관한 사항

2. 과학기술 정보의 유통체제 확립에 관한 사항

3. 전자계산조직의 도입, 이용기술 개발, 정보처리 요원 양성에 관한 사항

4. 기타 정보기술의 개발과 정보산업 육성에 관한 사항"

이 안은 전자계산 조직 도입과 활용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컴퓨터 도입이 위로부터의 요청이 아닌 실무진의 필요에서 자체적으로 실행된 것이 대부분이고, 정책의지가 능동적으로 추진되지 못한 탓이기도 했다.

그러나 초기 활용상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국내 컴퓨터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자못 크다. 전자계산조직을 진흥법 내에 직접적인 대상으로 포함했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전자계산기에 대한 정책의지가 반영됐던 것이다.

이는 전자계산기라 불린 컴퓨터를 최초로 도입했던 1967년 전자계산기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극히 단편적이었던 데다, 산업기반이 극히 취약한 상황에서 채택된 정책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를 발하는 것이다. 물론 이 때문에 정책 수립 과정이 경험이나 실천적 근거 위에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정책 입안자의 개념적인 구상에 불과했던 점도 있다. 하지만 첨단과학이라는 새 물결을 받아들이기 위해 필연적으로 시도해야 할 모의실험이기도 했던 셈이다. 이러한 정책적인 근거가 있었기에 1967년들어 전자계산기 최초 도입이라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사진설명: 1967년 경제기획원 통계국이 처음으로 IBM 컴퓨터를 도입해 만들어진 최초의 전산실. 한국IB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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