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5)- '첫 온라인 뱅킹'

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5)- '첫 온라인 뱅킹'

KRG

대부분의 은행이 KBCC를 통해 컴퓨터 공동이용을 도모했던 것과는 달리 외환은행은 KBCC 설립 이후에도 자체시스템으로 업무를 처리하며 금융계 프로메테우스로 위력을 과시했다.

67년 발족과 동시에 사무기계화위원회를 설치하고 기획조사부내 사무개선과를 신설하여 사무자동화를 추진한 외환은행은 동아무역을 통해 NCR 금전등록기, 회계기 등을 구입하며 타은행보다 과학적인 사무처리에 앞서갔다.

사실 외환은행은 설립 당시부터 전자계산기 도입을 계획해 왔다. 이에따라 68년 9월 NCR 센추리-100을 발주해 70년 1월 도입을 완료하고 독자적인 컴퓨터 운영에 들어가기에 이른다. 정부에서 공동이용 방안 요구에도 불구하고 당차게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신용장을 제출하고 기계를 발주한 뒤의 일이었던 데다 설립 5~6개월 전부터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온데 따른 자신감에서였다.

전산 교육도 자체적으로 실시해 인력을 충당했다. 컴퓨터 도입 이전인 68년부터 NCR 한국대리점이던 동아무역을 통해 일본 NCR에 전산요원을 파견하며 교육에 나섰다. 당시 일본은 본점과 지점간 온라인 뱅킹이 이루어진 상황으로, 이들에게 90일에 걸쳐 온라인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등 다각적인 지원책을 펼쳐 나갔다. 외환은행은 이들을 주축으로 행원 15명을 창단 멤버로 구성해 전산화를 위한 첫발을 내딛게 된다.

이후 69년 10월 정기적금업무를 배치처리로 전산화한 것을 시작으로 70년 10월 급여, 총계정, 신용장 매입과 같은 업무를 전산화했다. 정기적금업무는 전산화가 가장 어려운 부분. 일단 어려운 작업에 도전해야 타업무를 쉽게 전산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수행된 외환은행 전산화는 스스로 프로그램을 개발, 실제업무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인정받고 있다.

이와 더불어 외환은행이 빛을 발한 것은 민간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실시한 온라인 뱅킹에 있다. 외환은행은 72년 11월 미국에서 NCR 센추리-200과 온라인용 패키지를 도입하고, 일본 NCR의 기술지원에 힘입어 서울과 부산간 온라인 개통에 성공했다.

서울 본점의 호스트를 전화선으로 부산지점의 NCR 42 터미널과 연결해 을지로 전화국과 동대문 시외전화국, 대전중계소, 부산시외전화국 등 무려 9개 중계소를 거쳐 이루어졌는데, 당시 일본NCR은 같은 건물 내에서만 온라인이 가능하다며 난색을 표명했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실시간 뱅킹시스템이 구현됐던 것이다.

개통후 외환은행은 보통예금(72년 9월 프로그램 완성) 및 종합가계예금 송금(73년 4월 프로그램 완성)과 결제업무를 온라인을 통해 수행했다. 대상지역도 인천, 대구, 마산 등으로 넓혀갔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전환함에 따라 외환은행은 인력의 40%를 절감, 연 1억8천만원 이상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외환은행의 온라인 실시는 당시 은행장으로 재직중이던 김우근 행장의 집념에 의한 것이었다. 미국 출장시 LA와 뉴욕간 송금, 결제가 온라인으로 처리되는 것을 본 김우근은 당초 인천에 터미널을 설치키로 한 계획을 취소하고 바로 서울-부산간 온라인뱅킹을 추진해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어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융기관 전산화는 국내 컴퓨터 산업의 영역을 확산하는데 중요한 터전이 됐다. 초기 용역기관이 성장해가는 발판이 됐을뿐 아니라 민간기업의 컴퓨터 도입에 활력소를 불어넣은 업적이 요람기의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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