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7)- '대학에도 컴퓨터 도입 러시'

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7)- '대학에도 컴퓨터 도입 러시'

KRG

국내 대학 가운데 컴퓨터 도입의 첫 테이프를 끊은 곳은 1969년 1월 서강대학교였다. 미국 스페리랜드(현 유니시스)가 제작한 'USS-80(Univac Solid State-80)'을 당시 자매결연을 맺고 있던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기증받았다. 1960년 처음 미국에 설치된 USS-80은 이후 연세대가 도입한 기종과도 같은 것으로, 컴퓨터 세대별로 보면 2세대에 속했다.

도입에 앞서 서강대는 김만제(전 재무부 장관) 당시 전산소장과 하드웨어 책임자이던 물리학 박사 박병소, 매니저 장천조 교수 등을 주축으로 서강대 부설 전자계산소를 설립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68.11). 같은달 22일 IBM에서 A22 키펀치를 도입하고, 69년 4월 비로소 학사업무를 전산화하기 시작했다. 서강대의 컴퓨터 도입 과정이나 전자계산소 운영은 훗날 타대학에 좋은 사례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타대학에 비해 일찍 컴퓨터를 활용한 서강대는 71년 들어 학사업무와 SRI 업무전산화 작업을 계속하는 한편 서울시청 건축 프로젝트 및 입학시험을 분석하는 작업까지 범위를 확장해 간다. 하지만 USS-80은 늘어나는 업무에 비해 기억용량이 부족(5KB)하고, 드럼을 사용할 수 없어 76년까지 사용하다 77년 전라북도 학생과학센터로 이양하고 78년 유니백 9300을 도입, 새로운 기종으로 전산업무를 처리해 간다.

한편 연세대도 69년 10월 박대선 당시 총장의 주선으로 미국 유나이티드 포드 재단에서 USS-80을 기증받음으로써 국내 대학에서 두 번째 컴퓨터 도입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1월 한만춘 박사를 소장으로 컴퓨터센터를 설립하고 70년부터 전자계산요원 양성에 활용하기 시작한다. 상경대 통계학과와 공과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컴퓨터개론, 어셈블리, 포트란 등을 수업하는데 한만춘, 박규태, 한해식 교수 등이 초기 연세대 전자계산요원 양성에 일익을 담당했던 사람들이다.

서강대와 연세대는 국내 메이커를 거치지 않고 직접 미국에서 컴퓨터를 도입한 경우였다. 이와 달리 한양대는 서강대가 유니백 SS-80을 도입한 직후인 69년 5월 3차 대일청구 자금으로 일본 후지쯔에서 '파콤230-10'을 들여왔고, 12월말에는 숭실대가 IBM에서 IBM 1130을 도입했다.

이외 70년 5월에는 서울대가 전자계산소 발족과 함께 문교부 예산으로 IBM 1130을 도입했고, 71년 10월과 72년 4월에 각각 중앙대와 동국대가 IBM 1130을 도입했다. 이어 73년 2월 광운공대가 IBM 230/15, 74년 9월 홍익대가 CDC 3200을 들여온다.

1970년을 전후해 대학들이 컴퓨터 도입에 발벗고 나선 것은 컴퓨터에 눈떠가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학사행정의 전산화가 중요한 압박으로 다가온 것은 물론이고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전산학과 학생들의 실습교재 차원에서도 컴퓨터 도입은 중요한 사안이었다. 교수들 역시도 연구 분야에 컴퓨터가 필요했던 탓에 당시 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학자들은 연일 신문이나 학회지, 잡지들에 지도층의 컴퓨터 사용을 역설하며 컴퓨터의 실용성을 누차 강조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런 요구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학 재정상황에서 받아들여지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불요불급한 것도 아닌 컴퓨터를 도입하는데 예산을 붓는다는 것이 가당치 않은 시절이었던 셈이다. 더욱이 컴퓨터 도입을 주장하는 교수들마저 일부에 불과해 목소리를 키우는 것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학의 컴퓨터 이용은 이같은 예산 부족과 함께 기계 자체의 한계와 운영능력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단적인 예가 서강대와 연세대에서 도입한 USS-80. 74년 계명대학교에 USS II(10KB)가 기증 형태로 국내에 도입됐을뿐 더는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는 이 시스템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던 때문이었다.

초기에는 운영요원이 없어 한동안 기계를 놀리기도 했지만, USS-80은 당시 한국유니백에서도 고물기계라는 불명예스런 칭호를 얻은 기종이었다. USS-80 컴퓨터는 드럼을 메인메모리로 사용하는 2세대 컴퓨터로, 카드펀치로 컴파일해 기계 내부에서 오브젝트를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을뿐 아니라 고장이 자주 발생해 항시 불안하게 사용됐던 것이다.

대학에 설치된 전자계산기 역시 수요가 적었던 것은 물론이고, 주기억용량은 10KB 내외의 소형기기가 대부분이었다.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의 경우 대형기기를 보유하고 있는 대학이 대부분이었고, 국내 대학에 도입된 것과 같은 소형기기는 각 학과별로 보유하고 있는 곳도 상당수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당시 국내 대학의 전산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

70년대를 전후한 시기 국내 대학들에 컴퓨터가 하나둘 도입되며 학사행정이나 전산교육에 활용되기 시작하지만 실은 초보단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교육계에 컴퓨터 인식기반을 확산시킨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진설명: 서강대학교가 국내 대학중 최초로 1968년에 컴퓨터를 도입했다는 매일경제 1973년 9월 6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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