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9)- '첫 컴퓨터 범죄 발생'

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9)- '첫 컴퓨터 범죄 발생'

KRG

컴퓨터 보급이 활발해짐과 아울러 컴퓨터의 신기한 능력에 곳곳에서 감탄의 소리를 연발하고 있을 즈음 이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한다. 73년 10월 서울 반포 AID차관아파트 부정 추첨사건이 그것으로, 국내 최초로 컴퓨터를 악용한 사례로 기록된 것이다.

반포 AID차관아파트는 정부가 서울 강남지역 개발계획에 따라 미국 국제개발국(AID) 자금을 들여와 짓고 있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입지 여건이 좋아 분양 이전부터 높은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정부는 일반인들의 입주 신청이 몰리자 최종 입주자를 컴퓨터를 통해 추첨하기로 하고 용역을 과학기술처 산하에 있던 중앙전자계산소(NCC, 현 행자부)에 맡겼다.

NCC가 추첨을 맡게 된 것은 당시 국내에 도입된 컴퓨터 가운데 최대 용량인 131KB 유니백 1106을 보유하고 있었고, 정부 산하기관이라는 점에서 부정이 개입할 소지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건이 NCC 소속 말단 프로그래머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주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프로그래머는 수십명의 입주 신청자들로부터 뇌물 청탁을 받고 추첨 프로그램 처리 과정을 임의로 조작, 9세대분을 부정 당첨토록 했다.

NCC의 추첨 프로그램은 기록이 콘솔 프린터라는 감시용 출력장치에만 나타날 뿐 디스크에 로깅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콘솔 장치의 출력 과정만 조작하면 논리적으로 완전범죄가 가능했던 것이다. 즉 콘솔용지만 중간에서 제거해 버리면 됐다.

시스템상의 허점을 간파한 이 프로그래머는 청탁받은 특정인을 당첨시키기 위해 25매의 프로그램 카드를 정상적인 프로그램 카드 이외에 별도로 펀칭한 것으로 드러났다. 카드를 정상 프로그램 카드 사이에 끼워 컴퓨터에 입력 처리한 다음 최종 프로그램 컴파일 과정에서는 이런 과정이 프린터상에 출력되지 않도록 25매를 다시 빼고 컴파일 처리함으로써 특정 9세대가 당첨되도록 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청탁 과정에서 불만을 샀던 동료의 투서를 통해 발각됐는데, 실제로 당첨된 9세대 가운데 5세대가 중앙전자계산소 직원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수사기관에서도 컴퓨터 범죄에 대해선 생면부지였고, 검찰 역시 컴퓨터에 깜깜했기 때문에 치안본부에 수사지원 요청을 함으로써 수사가 진행될 수 있었다.

최초의 프로그램을 이용한 범죄인 동시에 초기 컴퓨터 이용의 허점을 노렸던 이 범죄는 당시 전사회적으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신문 사회면에 대서특필된 기사를 단지 부패한 정부 관료의 개입쯤으로 여겼던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사건 내막에 컴퓨터가 깊숙히 자리했고 더욱이 프로그램 개발 과정에 직접 참여한 프로그래머가 범인이었던 때문이다. 동시에 실무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의 컴퓨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반포 AID차관아파트 사건은 컴퓨터 만능주의에 젖어있던 일반인에게 컴퓨터의 본질을 깨닫게 했다는 또다른 측면의 평가도 도외시할 수는 없다. 컴퓨터가 실제로는 다양한 허점 투성이 기계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첫 컴퓨터 범죄의 발상지라는 불명예를 얻은 중앙전자계산소는 어떤 기관인가. 정부기관의 컴퓨터 도입이 활발해지면서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기에 이른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계획적으로 추진됐다기보다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덤벼든 기관이 대부분이었고, 이로 인한 외화낭비, 경비손실 등 여러 시행착오의 부작용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여러 부작용을 제거하고, 정부가 주도적인 입장에서 행정 전산화를 추진하려는 의도에서 정부기관 최초의 공동이용센터로 1970년 4월 7일 과학기술처 소속 중앙전자계산소(NCC)가 탄생한다. 과학기술처의 자체 업무를 전산화하면서 차츰 폭을 넓혀가려던 중앙전자계산소는 하지만 컴퓨터 도입이라는 실제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서 궤도 수정을 하게 된다. 70년 경제기획원 예산국에 제출된 각 부처의 컴퓨터 도입예산이 당시 정부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데다 예산의 효율적인 운영이라는 면에서 한 부처가 대형기종을 도입, 공동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도출됐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중앙전자계산소는 유니백 1106이라는 초대형 컴퓨터를 71년 9월 도입, 10월부터 가동에 들어간다.

유니백 1106은 유니백 1108을 개량해 71년 3월 시장에 출시한 최신기종으로 처리속도가 1.5ns, 256KB까지 확장되고, 보조기억장치로는 드럼 1, 디스크 4, 테이프 8대가 구비돼 있었다. 프로그래머 18명을 포함한 30여명의 요원으로 출발한 NCC는 71년 재무부와 농수산부의 결산업무나 농업센서스를 비롯해 원호처의 군인보험, 검찰청 범죄분석, 조달청 재물조사 등을 담당했다.

그러나 NCC도 업무수행과 더불어 많은 애로사항을 겪어야 했다. 컴퓨터에 대한 이해부족이나 표준화 문제, 전산화에 필요한 부정확한 데이터 발생 등 컴퓨터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애로도 많았으나 NCC 자체내 문제점이 더 컸다. 힘없는 과기처 산하 기구로서 각 부처와의 행정조정기능을 원만히 수행하는 것도 그렇고, 각 부처마다 독자적인 컴퓨터 활용을 고집하는데 따른 고충도 무시할 수 없었다. 대형기종을 다룰 요원이 부족했던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들 문제에 대한 해결과정을 모색해 가는 과정에서 NCC가 국내 컴퓨터 산업 발전에 미친 영향도 대단했다. 과기처에서 총무처(총무처 정부전자계산소)로 이관된 NCC는 공동 이용을 위한 정보처리센터의 역할, 정부요원양성의 교육적 역할, 장기전망예측 및 컴퓨터도입 승인 등 정책조정에 나름의 공헌을 했다. 특히 KIST가 담당하던 업무용역은 NCC로 바톤이 넘겨지면서 컴퓨터 활용의 길을 터가게 된다. 반포 AID 차관아파트 추첨 용역을 NCC가 담당했던 것도 당시 NCC의 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중앙전자계산소는 이후 75년 1월 1일 정부전자계산소로 개편됐고  1996년 정부전산정보관리소로 변경된 이후, 2005년에는 행정자치부 정부혁신본부 전자정보본부, 2008년에는 행정안전부 정보화전략실로 변경되었다.

<사진설명: 첫 컴퓨터 부정 사례가 적발된 내용을 다룬 기사(조선일보 1974년 2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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