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33)- '최초로 선거개표에 전산시스템 도입'
제5공화국의 11대 총선은 컴퓨터 역사에도 중요한 일획을 긋는 것이었다. 81년 3월 25일 치러진 총선에 KBS가 개표 전산시스템을 도입,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10시간 동안 TV로 생중계했던 것이다. 일반인에게 컴퓨터의 위력이 십분 전달된 사건이었던 셈이다.
총선개표전산시스템의 기반 시스템은 당시 잘나가던 프라임 기종. 중형컴퓨터인 프라임 750을 호스트로 전국 2백43개 개표소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중간 개표 결과를 실시간으로 처리, TV화면에 뿌려주었던 총선개표시스템은 컴퓨터와 방송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였다.
프라임 공급사였던 한국전자계산(현 KCC정보통신)과 KBS 공동 개발로 선보인 총선개표 전산시스템은 응용 프로그램만도 20종에 달했다. 선거구별 개표 현황, 정당별 득표 현황, 제11대 지역구 당선자 명단, 투표율 현황, 개표 진행상황, 정당별 당선자 수 예상표, 당선확실 지역 및 후보자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선거 개표 방송때면 방송사마다 경쟁적으로 제시하는 응용프로그램들이 실은 이 때부터 마련된 것이다.
총선개표 전산시스템은 80년 9월 제11대 대통령이 취임하고 총선 일정이 잡히면서 KBS는 컴퓨터를 통한 개표방송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고유업무 외에 별도 업무로 진행돼 당시 24명이던 KBS 전산실 요원은 퇴근도 못하고 24시간 기계실에서 살았다. 당시 관계자들은 '생활이 모두 뒤바뀔 정도였고, 선거 방송이 끝난 뒤 제자리를 찾는 데만도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고 고백했다.
당시만 해도 KBS와 MBC 등은 방송 제작용은 물론 일반 업무처리용 컴퓨터 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다. KBS는 3년 전인 78년부터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해 왔지만 한국전자계산에서 시간 단위로 임대해 사용했다. 임대료가 1천만원 이상 되기 전까지는 컴퓨터를 도입하기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시청료 징수, 자재관리, 인사, 급여, 해외방송 업무가 폭주하면서 81년부터 전산화 방침을 수립하고 있던 KBS는 총선 투표를 결정적인 기회로 시스템을 도입하게 된다.
선거개표 전산시스템은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엄청난 해프닝을 안고 출발했다. 개발 일정을 하루라도 앞당기고, 이왕이면 총선에 앞서 80년 12월 치뤄질 제8차 개헌 국민투표용 시스템부터 개발하려는 욕심이 발동했던 것. 한국전자계산의 장비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전 조사에 따라 선거를 20여일 앞둔 10월초부터 본격 개발에 들어간다.
그러나 개표 몇 분전 치명적인 사고가 나고 말았다. 시험중 정전 사태가 발생, 백업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던 개표 전산시스템 데이터베이스가 한순간 파괴되면서 개발자들의 꿈은 꿈으로 그치고 만다. 당시 KBS 전산실장은 '선거 20여일을 앞두고 준비한 짧은 기간 탓도 있겠지만 참담한 결과였다'고 회고했다. 막연한 계획에서 시작한 것이 최대 실수였다고 인정한 당시 KCC의 관계자는 '프라임의 명성은 중형 컴퓨터 분야에서 IBM을 능가했다. 설마 전기쇼크로 시스템이 파괴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는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시스템이 다운된 큰 이유는 전력문제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만 해도 국내 은행 온라인 시스템의 80% 이상이 전력 품질 불량 때문에 한 번 이상 다운된 경험을 갖고 있을 정도였다. 한국전자계산이 이런 돌발상황에 대비해서 백업시스템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은 한국전자계산측의 최대 실수였던 셈이다.
이에따라 한국전자계산은 자체 조직내 KBS 지원 긴급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10일간 밤을 지새는 등 사활을 걸었다. 실제로 총선개표 시스템이 실패할 경우 모든 책임을 맡겠다는 각오였던 한국전자계산은 예정대로 선거 사흘 전에 완료, 개표 직전까지 대기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전 시스템의 실패가 백업시스템 부재에 있던 만큼 사전준비도 확실히 했다. 미국에서 30개 장비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파괴되거나 누락된 것이 없는지 이상유무를 확인하고, 기계운송이 안되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자체장비까지 동원하는 등 이중삼중의 채비를 갖추었다.
이때 개발된 전산시스템이 프라임 750 호스트와 프라임 550 백업시스템, 300MBrmq 디스크 3대, 마그네틱 테이프 장치 2대, 프린터 2대에 디스플레이 단말기 2대, 그래픽 단말기 2대, 데이터 입력 단말기 10대 등이었다.
총선개표 전산시스템은 컴퓨터의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었다. 새벽 1시 총 집계가 산출됐는가 하면 시청자들의 문의전화에 대해서도 즉각적으로 답변이 가능했다. 당시 전산실장은 '나중에는 라디오쪽에서 느닷없이 컴퓨터실로 침입해 디스플레이 화면을 그대로 보도했다. 신문사 기자들도 그대로 적어 갔다. 컴퓨터 13년 경력에 컴퓨터가 그렇게 예뻐보이기는 그 날이 처음이었다'며 쾌재의 날을 회상했다.
컴퓨터와 TV방송의 결합이라는 미래상을 처음으로 제시한 총선개표 전산시스템은 이후 이산가족 찾기로 연결되며 좋은 본보기를 낳았다.
<사진설명: 1981년 3월 25일 치뤄진 총선에서 KBS가 개표 전산시스템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