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래아 한글을 개발한 이찬진 사장을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기린아라고 높이 평가하지만 사실 아래아 한글은 어느날 갑자기 이찬진 사장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제품이 아니다. 이 제품이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많은 선구자들이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노력한 결실이 맺어진 결과라고 봐야 더욱 정확할 것이다.”

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35)- '인물로 본 IT 파이오니아_1편'
1960년~70년대 한국 IT산업을 이끌었던 주요 리더
“우리가 아래아 한글을 개발한 이찬진 사장을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기린아라고 높이 평가하지만 사실 아래아 한글은 어느날 갑자기 이찬진 사장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제품이 아니다. 이 제품이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많은 선구자들이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노력한 결실이 맺어진 결과라고 봐야 더욱 정확할 것이다.”
TDX 전자교환기는 우리나라 기술개발사에 빛나는 금자탑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TDX 전자교환기는 정보통신 기술에 대한 우리의 자신감을 한껏 우뚝세웠다. 당시 전세계적으로는 60년대 초부터 지속돼온 통신기술과 컴퓨터 기술이 결합되는 전초단계로 디지털 기술이 통신기기, 특히 교환기기에 이용되기 시작한다. 70년대에 들어오면서는 디지털 교환기술을 이용한 전전자 교환기 개발로 컴퓨터와 통신의 완전결합이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세계로의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둘러싼 시비가 법정으로 비화돼 컴퓨터 업계를 비롯한 각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84년 8월 '일반업무와 회계실무'의 저자인 김명호가 스포트라이트 대리점인 연시스템시티 대표 이광희를 상대로 '컴퓨터 프로그램 무단복제 및 판매에 따른 손해액 1천만원을 보상하라'는 소송을 서울 민사 지방법원에 낸 것이다. 이는 국내 최초의 소프트웨어 무단복제에 대한 손해배상 청수 소송으로서
퍼스널 컴퓨터 시장이 8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급팽창 기로에 선다. 70년대가 컴퓨터에 대한 무지가 보편적인 시기였다면, 80년대 초는 기업에서 사무자동화의 일환으로 컴퓨터를 인식하는 데까지 발전한다. 그러던 것이 83~84년을 기점으로 교육용P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일대 전환의 시기를 갖는다. 일반 가정 생활용품으로 PC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