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8)- '컴퓨터를 이용한 중학교 무시험 추첨'

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8)- '컴퓨터를 이용한 중학교 무시험 추첨'

KRG

대학입학 예비고사 채점 전산화는 교육행정과 컴퓨터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었다. 그러나 교육행정 분야에 컴퓨터가 먼저 사용된 것은 대학 예비고사보다 1년 앞서 시행된 1970년 서울시 중학교 무시험 추첨이었다.

중학교 무시험 추첨에 컴퓨터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69년부터 거론돼 왔다. 한국전자계산소가 문교부와 서울시 교육위원회에 제의한 것으로, 시행을 두고 얼마간 옥신각신했다. 그러나 당시 권오병 문교부 장관은 예전처럼 수동식 추첨기를 사용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수동식 추첨이란 행정단위 및 학교 분포를 감안해서 서울특별시를 몇 개의 학군으로 나누고, 이 학군별로 수동식 은행알에 의해 추첨 배정을 하는 것. 한 학군 내의 중학교를 모두 숫자화해 알에 표시하고, 지원자 수만큼 알을 넣은 다음 학생들이 돌려 선택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권오병 장관이 한국전자계산소측 제안을 거절한 것은 학생들이 직접 돌리게 함으로써 추첨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과 잡음을 제거하려는데 1차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전자계산기에 대한 일천한 인식이 실행에 대한 두려움을 촉발했던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수동식 은행알 추첨은 경제적, 시간적인 손실이 막대해 비능률적이라는 지적이 높았다. 추첨에 사용하는 은행집회소의 수동식 추첨기는 한번 돌리는데만 30초씩 걸렸던 것이다.

이에따라 70년 추첨을 앞두고 서울시교육위원회는 은행알 추첨법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보다 과학적인 방법을 모색하던 중 69년 8월 학부형 대상의 앙케이트에 들어갔다. 결과 78%의 학부형이 컴퓨터를 이용한 추첨방식에 찬성했다.

이로써 70년 2월 3일 전자계산기 방식에 의한 추첨이 이루어졌다. 당시 오경인 서울시교육감이 프로젝트를 맡았던 대한전자공업주식회사의 구로동 전자계산실에서 버튼을 누르면서 시작된 추첨은 여학생 4만3천여명이 3일, 남학생 5만5천여명이 4일로 구분해 실시됐다.

행사 하이라이트는 컴퓨터를 통해 학교 배정에 필요한 난수 기호를 지정해 주는 일이었다. 이 난수 기호는 해당 학생의 출신 국민학교와 학년, 반, 번호, 남녀 성별 등 5개 조건을 입력해서 무작위로 뽑아낸 것. 난수배정에 의한 추첨방법은 원서 하나에 고유번호를 매기고 번호를 키펀치, 프로그래밍해 컴퓨터에 넣고 시교육위원회에서 정해준 번호에 따라 학생을 분류하는 것이었다. 이에따라 추첨이 끝난 5일 오경인 교육감이 경기여고 강당에서 70학년도 무시험 추첨 중학교별 기호를 발표함으로써 세인의 관심을 모은 중학교 무시험 추첨은 막을 내렸다.

원래 중학교 무시험 추첨은 한국전자계산소의 이주용 소장이 제안했었다. 이주용은 컴퓨터의 특성상 난수 기호 지정을 위해 학생의 통학거리와 버스노선, IQ분포, 성적, 신체조건 등 학교배정에 필요한 가능한 모든 요소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너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문교부측에 거절을 당하고 만다. 이에 한국전자계산소측은 '이런 방법이라면 은행알 뽑기와 다를바 없다. 이는 지극히 과학적인 기계를 비과학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으로 컴퓨터에 대한 모독'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한국전자계산소는 문교부측의 사고방식은 앞으로의 전자계산기 이용 및 보급에 역효과가 발생되는 만큼 전자계산기를 대여할 수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대한전자공업주식회사에서 69년 12월부터 기술요원과 시교육위원회측 실무자가 IBM 1401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3주간 작업시스템 분석에 이어 한달에 걸친 프로그래밍 디자인 결과 시행된 중학 무시험 추첨은 시작 전과 마찬가지로 시작 후에도 '비과학적인 난수 배정'으로 여러 곳에서 문제점이 노출됐다.

특히 희망하는 중학교와 지망생의 거주지에 대한 자료를 넣어주지 않아 같은 학군이면서도 통학거리가 멀게 배정됐다. 또 이론적으로는 추첨과정에서 기계조작자나 프로그래머가 학부모와 모종의 목계가 성립된다면 조작될 가능성도 있었다. 결과를 역으로 추정할 수 없기 때문에 추첨 이후 학부모의 항의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했던 것도 문제였다.

그러나 중학교 무시험 추첨은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과학 시대에서의 비과학적인 사용은 그만큼 개선, 발전의 여지를 남겨준 것이다. 이는 또한 기존 재래식 은행알 추첨을 탈피하여 문교 당국이 컴퓨터를 이용한 새로운 방식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대입 예비고사 성적 컴퓨터 처리와 함께 교육의 과학화에 일획을 그었다.

대한전자공업주식회사와 KIST를 거쳐 추진된 중학교 무시험 추첨은 이후 보사부와 철도청, 국방부, 농림수산부, 법무부 등 정부 부처의 행정전산화는 물론 금융권 및 일반 기업 전산화에도 모범적인 귀감이 됐음은 물론이다.

<사진설명: 중학교 무시험 추첨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한 경향신문 1970년 2월 5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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