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34)- '컴퓨터로 이산가족 찾기'
정부는 이산가족 찾기 사업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범국민적으로 추진한다는 기본 방침을 세우고 국내 이산가족 재회, 해외동포 이산가족 연결, 남북한에 흩어진 이산가족의 재결합 등 3개 분야로 나누어 추진키로 했다.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방영된 KBS TV의 특별기획 '이산가족, 지금도 이런 아픔이'의 가족 찾기 생방송은 전국민을 감동과 충격 속에 몰아 넣었고 정부 차원에서 장기적이고 구체화된 이산가족 찾기 사업을 탄생시켰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산가족 명단을 파악하기 위해 7월 13일부터 31일까지 거주지별로 대한적십자사와 협조해 적십자사의 시, 도 지사와 시, 군, 구청의 민원실, 재외 공관, 영사관 등을 통해 신고를 접수받았다. 이들 가족명단은 8월 15일부터 주민등록 발급대상 국민이 수록되어 있는 컴퓨터에 입력 전산화시켜 컴퓨터에 의한 재회를 주선하고, KBS는 이 방송 프로그램을 주 1회 심야 철야방송으로 정규화했다.
당시 KBS에 접수된 이산가족 찾기 신청 건수는 10만건을 넘어섰다. 그러나 자료 입력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축적된 데이터를 컴퓨터에 맞는 양식으로 고치고, 잘못된 내용은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방송국측은 40명을 동원, 1인당 1백50건씩 하루 6천건의 데이터를 기록하는 것으로 해답을 찾았다.
신청서의 소정 양식을 보면 신청인의 경우에는 성명과 아명, 구명, 별명, 본관, 성별, 주민등록번호, 고향, 본적, 주소, 외가를 기록해야 한다. 찾는 사람의 경우는 성명, 아명, 구명, 별명, 본관, 성별, 생년월일 또는 나이, 고향, 외가, 신체적 특징, 헤어진 시기와 장소, 이유, 기타 도움될 사항이 명기됐다.
전산 작업을 맡은 KAIST는 가족찾기 신청서를 대형 컴퓨터 IBM 3031에 입력하고, 신청자끼리 크로스 체킹을 하여 재회 가족을 찾아냈다. 여기서 체크되지 않은 가족은 제2단계 작업으로 넘겨 KAIST에서 전산화된 자료와 치안본부의 컴퓨터에 수록된 주민등록 자료를 검색, 가족을 찾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치안본부측에서도 82년 6월 1일부터 컴퓨터로 헤어진 가족을 찾아주기에 나서 83년 7월까지 8천건을 접수받아 2천여건이 넘게 해결했다. 그러나 여기서 항상 문제가 되었던 것은 주민등록 말소자나 행방불명된 사람, 가출한 경우는 컴퓨터로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부 지원하에 KAIST와 치안본부가 시도한 이산가족 찾기 전산화 작업은 KBS의 이산가족 찾기와 치안본부 및 몇몇 단체에서 그간 행해왔던 가족찾기 사업을 통합 정리하여 일괄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한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당시 시대적·경제적 배경이 성숙하기도 했지만, 이산가족의 재회를 주선한 것은 무엇보다 전자 시대의 총아인 컴퓨터의 혁혁한 공로였다.
아무리 컴퓨터로 처리한다고 해도 신청자가 정확한 대상자의 자료를 기입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근본적인 한계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산가족 찾기가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서로를 찾아야만 하는 제약'이 있는 것과 달리, 한 쪽의 요구만으로도 이산가족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당시 이산가족 찾기에 컴퓨터를 활용했던 것은 컴퓨터가 직접적인 생활로까지 파급되는 좋은 사례가 됐던 것은 분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