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국내에 컴퓨터가 도입된지 어언 6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국내 디지털 역사 속에 가장 중요한 이벤트들 중 100가지 이슈를 골라 정리했습니
국가기간전산망은 국내 전산수요와 정보산업 육성을 연계시켜 국가적 차원에서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앞으로 다가올 정보화 시대에서의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당위성을 갖고 구상된 계획이다. 이 망에 대한 구상은 제5공화국 출범 당시부터 시작돼온 것이지만, 실제 정책에 반영되어 계획된 것은 1983년 3월에 있은 정보산업 육성방안 보고에서였다. 이 보고에서 정보산업의 효율적 육성을 위해 '정보산업육성위원회'를 구성하고,
범 정부 차원에서 정보 인프라로 국가기간전산망을 구축하려는 계획이 87년 1월 1일 본격 시행되면서 국내 정보통신산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행정전산망·금융전산망·교육연구전산망·국방망·공안망 등 5대 전산망 추진 계획은 1982년부터 4년여에 걸친 준비기간을 거쳐 86년 12월 31일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전산망 촉진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이로써 5대 전산망은
1983년 '정보산업의 해' 이후 비로소 본격화되기 시작했던 국내 IT산업은 상공부와 체신부, 과학기술처가 중심이 되어 소관업무를 맡아왔다. 소프트웨어 관련 분야는 과기처가, 하드웨어는 상공부, 이와 관련된 통신망은 체신부에서 관리하는 체제를 띠었다. 이에따라 그간 과기처에서는 소프트웨어 산업 진흥책, 관련 연구소 및 단체 지도육성, 정보산업에 대한 장기계획 수립에 수반한 정보산업육성 관계법안 수립, 행정전산망에 관련한
TDX 전자교환기는 우리나라 기술개발사에 빛나는 금자탑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TDX 전자교환기는 정보통신 기술에 대한 우리의 자신감을 한껏 우뚝세웠다. 당시 전세계적으로는 60년대 초부터 지속돼온 통신기술과 컴퓨터 기술이 결합되는 전초단계로 디지털 기술이 통신기기, 특히 교환기기에 이용되기 시작한다. 70년대에 들어오면서는 디지털 교환기술을 이용한 전전자 교환기 개발로 컴퓨터와 통신의 완전결합이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세계로의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둘러싼 시비가 법정으로 비화돼 컴퓨터 업계를 비롯한 각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84년 8월 '일반업무와 회계실무'의 저자인 김명호가 스포트라이트 대리점인 연시스템시티 대표 이광희를 상대로 '컴퓨터 프로그램 무단복제 및 판매에 따른 손해액 1천만원을 보상하라'는 소송을 서울 민사 지방법원에 낸 것이다. 이는 국내 최초의 소프트웨어 무단복제에 대한 손해배상 청수 소송으로서
퍼스널 컴퓨터 시장이 8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급팽창 기로에 선다. 70년대가 컴퓨터에 대한 무지가 보편적인 시기였다면, 80년대 초는 기업에서 사무자동화의 일환으로 컴퓨터를 인식하는 데까지 발전한다. 그러던 것이 83~84년을 기점으로 교육용P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일대 전환의 시기를 갖는다. 일반 가정 생활용품으로 PC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1980년대 들어 개인용 컴퓨터는 국내외적으로 각광을 받으며 다양한 용도에서 맹활약하기 시작했다. 애플이나 탠디, IBM, 오스본, 쿠퍼티노 등이 대표적 회사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독자적인 플랫폼에 기반해 설계된 것들이어서 타기종 소프트웨어와 호환되지 않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이와는 또다른 축을 형성한 것이 호환기 생산업체들이었다. 독자 개발능력 없이 IBM이나 애플같이 당대 유력 제품을 복제
70년대 금융권에서 시작된 사무자동화(OA)는 80년대 들어 전 산업으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사무자동화는 기존의 사무기기에 컴퓨터의 기억 능력과 제어기능을 더한 것으로, 경영 합리화 차원에서 컴퓨터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이런 OA의 가장 핵심되는 부분이 워드프로세서였다. 도형이나 문자를 포함한 모든 자료를 마음대로 편집하고 처리할 수 있는 워드프로세서는 80년대 기업과 가정을
한국의 IT산업은 지난 60여년 동안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다. 이 기간동안 국내 IT업계는 수많은 경영자를 배출했다. 물론 보는 이들에 따라 이들의 공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도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주변 여건이 불투명하고 AI시대를 맞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치열한 경쟁 체제에
정부는 이산가족 찾기 사업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범국민적으로 추진한다는 기본 방침을 세우고 국내 이산가족 재회, 해외동포 이산가족 연결, 남북한에 흩어진 이산가족의 재결합 등 3개 분야로 나누어 추진키로 했다.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방영된 KBS TV의 특별기획 '이산가족, 지금도 이런 아픔이'의 가족 찾기 생방송은 전국민을 감동과 충격 속에 몰아 넣었고
제5공화국의 11대 총선은 컴퓨터 역사에도 중요한 일획을 긋는 것이었다. 81년 3월 25일 치러진 총선에 KBS가 개표 전산시스템을 도입,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10시간 동안 TV로 생중계했던 것이다. 일반인에게 컴퓨터의 위력이 십분 전달된 사건이었던 셈이다. 총선개표전산시스템의 기반 시스템은 당시 잘나가던 프라임 기종. 중형컴퓨터인 프라임 750을 호스트로 전국 2백43개 개표소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중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