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4)- '은행권의 컴퓨터 활용'

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4)- '은행권의 컴퓨터 활용'

KRG

1960년대말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함께 경제 규모는 팽창일로로 접어들었다. 이에따라 금융부문이 양적으로 성장하며서 여수신 업무량이나 점포수, 은행원들이 급속하게 증가됐다. 은행 신설도 잇따랐는데 이때 설립된 은행이 외환은행, 주택은행, 신탁은행(현 서울은행) 등이다. 이렇게 신규은행 등장에 따른 경쟁이 심화되면서 은행들은 저마다 인건비 절감과 사무개선, 즉 생산성 향상을 위한 컴퓨터 도입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은행감독원을 중심으로 한 금융계 일부에서는 은행의 독자적인 컴퓨터 도입에 따른 막대한 비용과 인력, 선진 컴퓨터 도입기업들의 시행착오 사례를 들어 난색을 표명하고 나섰다. 이때 주무부처인 재무부 이재국장이던 장덕진씨가 '전 금융기관 EDPS화 통합운영 방안'을 고안해 냈다. 골자는 막대한 컴퓨터 도입비 절감과 인력확보, 시행착오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금융기관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 공동이용센터를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이에따라 당시 13개 은행이 '금융기관사무기계화개발위원회'를 창설하고, 산하기관으로 금융기관 전자계산본부(KBCC)를 설립하게 된다.

KBCC는 69년 10월 상업은행(현 한빛은행)이 도입하려 했던 유니백 9400을 승계 인수하면서 업무를 시작했다. 상업은행이 독자적으로 확보했던 인력과 노하우까지 승계한 KBCC는 70년대 중반까지 최초의 컴퓨터 공동이용센터로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것이었다. 이외에도 KBCC는 컴퓨터 이용기반이 미약했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과도기적인 방법으로써 장래의 발전단계로 나가는 길을 열어 주었는데, 이는 75년 4월 유니백 9480을 도입한 농협중앙회를 선두로 각 은행이 독자적으로 컴퓨터를 보유, 활용토록 하는데 초석이 됐다.

KBCC는 각 은행의 급여업무와 적금처리를 수탁 처리하는 동시에 전산요원 양성과 조사 업무에도 힘을 썼다. 70년 언더스탠딩 컴퓨터, 10월 EDPS 해설서, 71년 은행경영과 컴퓨터, 73년 코볼언어, 포트란언어 등 책자를 발간했다. 이어 일본과 미국 금융기관의 컴퓨터 도입사례 연구를 통해 '은행경영에 있어서의 전략적인 의사결정과 컴퓨터의 역할', '은행업무의 EDPS화의 효율적 방안'과 같은 대정부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초기 요원양성에서부터 문제점이 대두됐다. 컴퓨터 교육을 받은 이후에 전산실이 아닌 타부서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속출함에 따라 전문인력의 유출현상이 두드러졌던 것. 책임자로 승격되면서 프로그램 개발 업무를 기피하는가 하면, 전산업무라는 전문직에만 종사할 경우 관리자로 승격되는 길이 좁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탓이다.

은행들의 컴퓨터 공동이용이라는 설립 목적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은행 업무의 폭주에 따른 컴퓨터 용량의 한계 때문이었다. 또다른 문제는 은행 업무의 특성상, 용역처리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것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60년대 말부터 보편화되기 시작한 온라인 뱅킹이나 과목별 온라인같은 본격적인 은행업무 처리는 KBCC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컴퓨터 용량 한계는 사실상 KBCC 발족부터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제아무리 용량이 크더라도 13개 회원은행의 용역을 제시간에 처리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특히 매달 하순부터 익월 초순에 걸쳐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업무 집중 현상은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월말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피크타임에는 KBCC 전자계산기가 24시간 가동돼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은행별 업무 처리량이 늘어나면서 일시적인 하드웨어 다운이라도 있을라치면 업무중단에 따른 혼선은 불가피했다.

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은행의 경영여건이 호전되고, 자체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고는 처리할 수 없을만큼 업무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와 때를 같이해서 정부는 75년 1월 금융업무 전산화 종합육성계획 수립, 지로 및 어음 교환업무의 기계화 개발을 골자로 정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특히 여기에는 금융기관 사무기계화개발위원회가 은행의 컴퓨터 도입을 심의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결국 금융기관의 특성과 폭주하는 업무량을 고려해 정부가 은행별 자체 컴퓨터 도입을 권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따라 75년 4월 농협중앙회가 처음으로 유니백 9480을 도입하는 한편 11월 상업은행이 후지쯔에서 파콤 230/48을 들여왔다. 이어 76년 국민은행과 신탁은행이, 77년 조흥은행과 제일은행 등이 독자적으로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함에 따라 은행들의 자체 전산화시대가 열렸다. 금융기관전자계산소(75.10), 은행지로관리소(77.6)로 명칭이 바뀐 KBCC는 86년 전국어음교환소와 통합, 금융결제관리원으로 새로이 태어나면서 금융전산망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KBCC 때문에 은행의 독자적인 컴퓨터 도입시기가 늦추어졌다며 비난의 시각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초기의 시행착오를 방지하고 표준화에 의한 은행 공동시스템을 개발함으로써 각 은행에 미친 영향은 비단 컴퓨터 도입시기에 관계없이 금융기관 전산화의 뿌리가 되고 있다. 은행 실무진들이 대면해 각자의 프로그램상의 문제점을 격의없이 토론함으로써 효과적인 해결방안을 얻고, 선의의 경쟁을 통한 자기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도 중요한 이점이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1970년 3월부터 한국외환은행에서 전자계산센터를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등 당시 금융권의 컴퓨터 도입에 관한 기사(매일경제 1973년 8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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