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6)- '민간기업으로 파고드는 컴퓨터 바람'

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6)- '민간기업으로 파고드는 컴퓨터 바람'

KRG

정부 공공기관 중심의 컴퓨터 도입이 확산되고 있을 즈음 민간기업에서도 컴퓨터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실시한 '전자계산기 도입에 따른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대한중석과 삼성, 럭키, KAL(한진), 산업개발연구소, 석유공사, 도로공사, 현대건설, 동국제강, 연합철강 등이 70년대 이전에 이미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거나 도입을 추진했다.

민간기업 컴퓨터 도입의 효시를 이룬 유한양행이 사전준비 없이 컴퓨터를 도입한 것과는 달리 럭키는 바깥에 알려지지 않은채 컴퓨터 활용을 위한 기초를 다지고 있었다. 당시 럭키그룹 총수인 구인회를 비롯한 간부 경영진들은 생산능률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전자계산기 도입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이에따라 67년 10월 기획조정실 내에 EDPS 도입 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박승한(당시 부사장)이 위원장, 양한모(당시 금성 부장)가 간사로 첫 발을 내딛었다.

간부진의 컴퓨터 인식을 강화하려는 노력도 가시화됐다. 68년 5월 허준구, 박승찬, 구자경 등 사장단이 도일, 전자계산기 활용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하는 한편 일본업계 활용실태를 시찰하며 컴퓨터 활용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또 양한모를 일본에 파견, 일본의 전자계산기 활용실태를 조사하게 했다.

또 68년 4월 1일부터 4일까지 건국대 김정년 교수, IBM코리아 정곤수를 초청해 EDPS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전사적으로 EPDS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켰다. 컴퓨터 도입 직전인 69년 5월 EDPS 요원교육에는 구인회 회장이 직접 참석해 출석을 체크할 만큼 최고 경영진의 컴퓨터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이후 럭키그룹은 회장 직속기관으로 전산실계를 설치(69.1.1)하고 허준구 기획조정실장 산하에 전자계산실(실장 박승찬)과 전자계산부(양한모 부장)를 두었다. 한편 금성사는 EDPS 담당이사 아래 시스템 개발부(부장 김진억)를 신설했으며, 락희화학공업측도 시스템 개발부(당시 진단부장 김영태)를 신설하고 세 명의 시스템 디자이너를 두었다.

그러나 이 조직운영은 '선도입 후사무개선'이라는 기치 아래 럭키가 행한 최초의 시행착오였다. 럭키그룹은 금성사와 락희화학의 공동운영 형태로 컴퓨터를 업무에 적용코자 했지만 각 부서가 서로의 업무 내용을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해 전자계산실에서 실제 활용되기에는 조직 구성상 허점이 노출됐던 것이다. 그리하여 6월 럭키와 금성은 분리 운영된다. 1968년 6월 IBM에 발주, 69년 10월 24일 가동을 시작한 IBM 360-25(32KB, 월 3백만원 임대)를 양사가 각각 이용하게 된 것이다.

전 종업원의 컴퓨터에 대한 인식을 개화하고 계몽하기 위해 조회석상에서 컴퓨터 강의도 마다하지 않던 금성사가 최초로 개발한 업무는 가전사업부 자재 전산화였다. 이어 급료계산(70.6), 매출(시판)업무(71.1), 금성가족제도 전산화(71.3) 등을 전산화하는 한편 부산공장에 71년 3월 전산실을 설치한다.

그러나 초기업무중에는 개발 시간만 낭비했을뿐 실제 업무에 적용하지 못한 프로그램도 많았다. 이는 전산실 요원의 경험부족과 컴퓨터 활용지식의 미천함 등에서 기인된 어쩔 수 없는 결과었다. 그러나 초기의 이런 시행착오가 럭키그룹 전산화의 주춧돌이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편 시기적으로는 럭키 전산화에 뒤지지만 초창기 컴퓨터 도입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곳이 바로 KAL이다. 시기적으로 KAL이 KALCOS-1을 개발한 시기를 전후하여 국내 컴퓨터 산업계는 바야흐로 민간기업이 전산화의 수레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돌리기 시작할 때이다.

KAL이 컴퓨터 활용을 위해 컴퓨터도입추진위원회를 설치한 것은 70년 2월 1일. 민영화된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전산화를 추진하기 위한 방향설정과 기종 선정 등 협의를 모색한 끝에 5월 전자계산실이 탄생한다. 문성렬, 신훈, 황활영 등 11명으로 출발한 전자계산실은 IBM코리아에 요원 연수교육을 시키는 한편 급여관리와 수입관리업무 전산화를 추진한다. 이어 국제선 여객운송 수입업무 전산화, 발매수입업무와 화물운송업무 전산화를 추진하게 된다.

73년 접어들면서 KAL은 항공업무에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예약업무가 폭주를 이루고 복잡도를 더해감에 따라 예약시스템을 개발키로 하고, 대형기종인 IBM 370-145를 도입했다. 당시 세계 공동으로 쓰이던 IBM의 IPARS 패키지를 도입, 개발에 착수한 KAL은 한국적인 특수사정과 사용부서측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필요한 기능 수정 및 추가개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귀중한 경험을 얻은 KAL은 60여명의 전산요원을 대폭 확보하며 73년 7월 IBM에서 개발중이던 ACACP 8.1을 최종 사용키로 하고 ACP Version4를 기반으로 응용프로그램 개발에 들어가 75년 5월 KALCOS-1을 개발, 대고객서비스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IPARS를 모체로 개발된 예약시스템인 KALCOS-1을 통해 KAL은 예약 1건당 평균 처리시간이 3초 이내 가능하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국내 초기 컴퓨터산업은 물론 세계 유수의 항공사와의 경쟁력도 강화하게 됐다.

럭키나 KAL이 경영진의 결정으로 컴퓨터를 활용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합철강이 같은 괘도를 밟기 시작했다. 민간기업으로는 세 번째로 전산화에 뛰어든 연합철강은 국내 컴퓨터 활용에 새로운 색깔을 입혀 나갔다.

해외여행을 통해 전산화된 외국 철강업계의 현실을 확인하고 돌아온 연합철강의 권철현 사장은 71년 1월 총무부 산하에 EDPS과를 발족하며 전산화의 포문을 열었다.

연합철강이 본격적인 전산화 작업에 들어간 것은 생산관리 부문의 업무전산화였다. 73년 9월 IBM 360-25를 48KB로 확장한 후 부산공장에 전산위원회를 설치한 연합철강은 생산계획, 공정관리, 생산집계, 제품지장관리, 품질관리, 노무관리 등 생산관리 전 부문 전산화에 들어가 마침내 74년 3월 국내 처음으로 생산관리 부문의 온라인화를 이루게 된다.

여느 기업을 막론하고 전산화는 영업활동의 감사도구나 인원감축의 수단으로 오해되면서 사회적인 불안감을 유발하기도 했다. 또 현장요원을 교육시키는데 따른 애로는 물론이고, 기술과 경험은 부족한 반면 전산으로 지원해야 할 부서 업무량이 폭주하는 사태까지 발생하는등 시행착오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전산화는 비슷한 시기에 용역기관을 통해 전산업무에 착수했거나 컴퓨터를 도입하려는 기관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70년대 중반, 고지를 향한 약동기의 교두보였다. 이후 포항제철이나 석유공사, 도로공사, 석유화학지원공단, 은행, 농협, 동아제약, 제일모직, 현대조선 등이 내적 외적으로 맥을 이어나가게 된다.

<사진설명: 1967년 9월 5일자 조선일보에 게재된 EDPS 확산 움직임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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