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20)- '미니컴퓨터 시대 돌입'

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20)- '미니컴퓨터 시대 돌입'

KRG

컴퓨터가 점차 산업계 전반에 걸쳐 새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하면서 미니컴퓨터 업체들이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중대형급 컴퓨터의 도입비율은 감소하는 대신 미니컴퓨터 도입은 급속하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60년대 말까지 국내 도입된 컴퓨터는 IBM의 S/360, 일본 후지쯔의 파콤 시리즈, CDC의 CDC 시리즈, 스페리랜드(유니시스)의 유니백 시리즈가 컴퓨터 산업의 중추를 형성하며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70년대로 넘어서면서 데이터제너럴의 노바(NOVA), 디지털이퀴프먼트(DEC)의 PDP, 왕래버토리즈의 왕(WANG), NCR의 센추리(Century), 버로스의 버로스(Burroughs) 등 미니컴퓨터 기종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미니컴퓨터는 반도체 기술 발전에 힘입어 중대형급에 비해 가격은 최고 1/10까지 저렴하면서도 성능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 큰 특징. 하지만 당시만 해도 대형이니 소형이니 하는 컴퓨터 기종별 구분에 선을 그을 수도 없었거니와 기종 선택 역시 올바른 판단을 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단지 기존 대형컴퓨터에 비춰 기억용량이 적은 컴퓨터를 도입하는 것이 전산업무에 착수하려는 기업군의 비용절감과 시행착오 방지에 어느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72년부터 75년까지 '노바01' 등 미니컴퓨터는 KIST 방식기기연구실을 비롯해 해양개발연구소, 해군본부, 동국제강, 한영공업(현 효성중공업), 강원산업 등 30여곳에 공급됐다. 같은기간동안 국내 도입된 전체 컴퓨터 93대의 40%가 넘는 비율이다.

미니컴퓨터의 출현은 대기업의 독점물로 여겨지던 컴퓨터가 중소기업에도 활용의 여지를 제공하게 됐다는 점 이외 컴퓨터 활용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컴퓨터 업계에도 새로운 기운을 불러왔다.

71년 11월 한국키보드와 72년 4월 전기통신연구소에 PDP 8/E가 미니컴퓨터로서는 국내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과 때를 같이해 미니컴퓨터 취급업체인 인터내셔널 데이터 코퍼레이션(IDC), 한국뉴콤, 인터내셔널 데이터시스템 코퍼레이션(IDcS), 동양시스템산업(OSI), MC인터내셔널, 금호실업 전자전기사업부, 동양전산기술 등이 잇따라 출범하며 경쟁체제를 형성했다. 특히 이들 가운데 DG의 노바01, 왕래버러토리즈의 왕2200B, DEC의 PDP 8/E 3총사가 으뜸으로 꼽혔다.

DG의 노바01은 72년 5월 DG의 총판으로 출범한 IDC에 의해 국내 첫선을 보인다. IDC는 1960년대말 한일은행과 한국전력 등에 NCR의 전자식 회계처리기를 공급한 바 있는 동아무역의 이명진이 일본 샤프전기 지원아래 설립한 회사였다. 이명진은 일본NCR을 드나드는 과정에서 샤프전기와 손이 닿았고, 71년부터 아예 샤프전기 해외사업본부 서울 주재원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며 노바 기종 판로를 개척해 나간다.

IDC가 처음 미니컴퓨터를 판매한 곳은 KIST의 방직기기연구실이었다. KIST 방직기기연구실은 나중에 이 기종을 모델로 최초의 국산컴퓨터인 '세종1호'를 개발하게 된다. 하지만 국내설치 효시를 이룬 노바01은 실제로는 IDC를 통해 도입되지 않고 주일한국대사관을 통해 외교문서 속에 포함된 채로 일본에서 직접 통관절차를 밟았다. 당시만 해도 KIST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던 터라 불편한 대일관계의 와중에서도 KIST 발전을 위해 정부의 입김이 드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IDC의 노바01의 국내 판매는 신통치 않아 KIST 방직기기연구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다. IDC는 73년 7월 샤프에서 출자금을 지원받아 한일 합작법인 샤프데이터코리아(한국샤프)로 재출발하면서 전자수첩 판매사로 업종을 전환하기 때문이다.

노바01 국내 공급은 1년간 공백기를 거쳐 74년 1월 IDsC에 의해 재개된다. IDC가 샤프데이터코리아로 전환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명진이 설립한 IDsC는 미국DG가 투자한 일본의 니혼 미니컴퓨터(일본DG)와 계약을 맺고 노바01 시리즈 총대리점 판매권을 소유하게 된다. 당시 니혼 미니컴퓨터는 동남아지역에 공급한 노바01을 직접 생산하고 있었다.

IDsC는 77년 4월 동양정밀공업(OPC) 그룹에 흡수되면서 사명을 동양시스템산업(OSI)로 변경했다가 OPC 부도로 88년 최후를 맞았다.

한편 노바 기종은 IDsC 이외에 MC 인터내셔널이 미국 DG에서 구입, 판매했다. 노바01을 비롯해 노바840, 이클립스 등이 목포상고와 한국과학원, 동광전기(이상 74년), 건국대, 선박연구소, 해양개발연구소, 홍능기계공업(이상 75년), 삼성전자공업(76년)에 공급되며 미니컴퓨터의 뿌리를 내려가게 된다.

미국 DEC가 63년 발표한 PDP 미니컴퓨터 계열인 PDP 8/E는 72년 4월 전기통신연구소가 도입하며 처음 소개됐다. PDP 8/E는 72년 한국키보드를 비롯해 74년 인천제철, 현대양행, 강원산업에 공급됐지만 국내에 뚜렷한 에이전트없이 오퍼상을 통해 공급됐다.

이후 75년 2월 동양전산기술(OCE)이 발족해 PDP시리즈와 후속 기종인 VAX 11 공급을 전담하게 된다. 지금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OCE는 70년대 후반까지 국내에서 내로라는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이윤기(전 엘렉스컴퓨터 회장), 권순덕(전 한맥소프트웨어 대표), 김영식(전 엘렉스컴퓨터 대표), 김영한(전 하이테크마케팅연구소장), 김천사(전 두산정보통신 대표), 김병각(전 컴팩코리아 전무), 윤부근(전 부륭시스템 대표) 등이 OCE를 대표하던 인물들이고 보면, 당시 OCE의 파워를 미뤄짐작할 수 있다.

OCE는 국산컴퓨터를 생산하려는 야심을 품고 설립됐다. 당시 ICR의 한국지사장으로 있던 이윤기는 컴퓨터 산업이 기술집약산업인 만큼 기술만 소지하면 회사 설립이 가능하고 컴퓨터 국산화 길을 여는데 앞장설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에따라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던 PDP 시리즈 노하우를 터득하는 것이 첩경이라는 판단에서 DEC 국내 총판을 맞았다. 출범 당시 두산그룹 정수창 회장으로부터 창업자금을 지원받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또 처음으로 시작하는 OEM 산업인만큼 KIST의 이용태(전 삼보컴퓨터 회장), 성기수(전 엘렉스컴퓨터 고문), 서강대 박병소 교수 등으로부터 기술지원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OEM 방식의 국산컴퓨터 생산은 결과적으로 기업경영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 말았다. 이에따라 OCE는 77년 3월 두산그룹 계열 동양맥주에 지분 50%가 매각되고, 다시 79년 5월 합동통신의 광고기획실 부문과 통합돼 오리콤으로 재탄생된다. 오리콤은 다시 83년 DEC 사업을 전담해온 전산사업본부를 두산컴퓨터로 독립시키지만 88년 DEC의 현지법인인 한국디지털(한국컴팩)이 설립되면서 인력과 고객을 모두 넘겨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한편 왕래버러토리즈의 왕은 73년 10월 김덕기(전 컴퓨터코리아 대표)와 김영한, 김성중이 설립한 한국뉴콤에서 공급했다. 왕래버러토리즈는 한국뉴콤이 출범하기 전에 태영사라는 오퍼상을 통해 워드프로세서 전용기와 전자계산기를 공급했는데, 한국뉴콤이 설립되면서 왕2200A 등 컴퓨터 기종을 국내에 판매할 수 있었다.

뉴콤은 대일유업과 한영공업에 왕2200A를 판매하고 나서 바로 금호실업에 흡수된다. 이후 조직력과 자금력이 더해지면서 79년까지 30대를 공급하며 IBM과 DEC, 후지쯔, DG에 이어 국내에서 5위권에 진입하게 된다.

<사진설명: 동양전산기술(OCE)에서 1979년 미국의 DEC사 미니컴퓨터인 VAX 11 시리즈를 국내에 공급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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