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27)- '국내에 퍼스널 컴퓨터(PC) 등장'
우리나라에서 PC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81년 말. 컴퓨터 역사가 일천한 국내 상황에서 PC가 비교적 일찍 도입돼 사용된 것은 같은해 뉴스위크나 타임, 뉴욕타임즈 등 외지에서 IBM PC와 관련한 기사가 대서특필됐기 때문이다. 외국 유력지들은 PC라는 매우 생소한 단어에도 불구하고 IBM이라는 초대형 공룡기업이 발표했다는 점에서 장래성에는 의심을 갖지 않았다.
원래 PC란 Personal Computer의 약어이기도 하지만, 81년 8월 IBM이 발표한 'IBM PC'라는 고유 상표명에서 유래된 것이기도 했다. 라스베이거스 컴덱스쇼에서 발표된 IBM PC는 CPU는 인텔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8080A를,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 1.0을 탑재한 것이었다. 현재까지 PC는 IBM PC 규격을 따르는 호환기종으로, PC의 역사는 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당시 국내서는 '마이크로 컴퓨터'라는 개념이 PC라는 의미를 대신해 사용됐다. 미국 애플의 애플시리즈, 탠디의 TRS 80, 일본 아키스와 마이크로소프트가 공동 개발한 MSX시리즈, 미국 오스본의 오스본, 삼보컴퓨터의 SE 8001 등이 통칭 마이크로 컴퓨터, PC라는 범주에 포함된 것이다. 마이크로 컴퓨터라 하면 대개는 인텔 8080A나 모토로라의 M6800A, 자일로그의 Z-80, 페어차일드의 F-8같은 8비트용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장착되고, 주기억장치는 32~648M 램이 사용된 것을 말했다.
마이크로 컴퓨터는 이같이 인텔이나 모토로라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CPU로 채용했거나, 컴퓨터 성능이나 용량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최하위 기종을 의미했다. 보통 대형, 중형, 소형, 미니컴퓨터로 구분할 때 마이크로 컴퓨터는 미니컴퓨터 다음의 초소형을 의미했다. 그러나 가격은 2백만원선을 훨씬 넘어 일반인은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애플컴퓨터가 3백만원대 이상, 삼보의 SE 8001도 2백50만을 넘었다.
PC 공급은 국내서는 삼보전자(삼보컴퓨터)와 애플의 국내 총대리점이던 한국소프트웨어(삼보컴퓨터에 흡수), 엘렉스가 대표적인 업체였다. 엘렉스가 도입한 바이트숍은 기존의 메인프레임과는 달리 일반 가전제품처럼 상점에서 손쉽게 컴퓨터를 판매한다는 개념으로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큐닉스 컴퓨터와 SE 8001, 오닉스, 애플컴퓨터, 오스본, 마이크로 8, 엡손 컴퓨터 등을 모두 공급하고 있던 엘렉스는 광고 문안에도 '엘렉스는 각종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고 있습니다'를 삽입, 80년대 들어 폭발적인 PC산업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삼보전자는 81년 4월 국산컴퓨터 SE 8001 개발에 성공하며 국내 PC산업 발전의 주역이란 평을 얻었다. 한동안 삼보컴퓨터가 '삼보컴퓨터의 역사가 국내 컴퓨터의 역사입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높인 것처럼 삼보컴퓨터는 국내 PC산업과 맥을 같이 했던 것이다.
이들 외에 또다른 공신들이 있다. 바로 청계천 상가다. 희망전자와 홍익컴퓨터, 로얄컴퓨터, 에이스컴퓨터, 골든벨, 한국마이컴, 브레인컴퓨터, 석영전자 등 청계천 상가를 일군 이들은 조립PC 1세대로 활약한 주역들이다.
청계천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밀집돼 있던 이들 상가는 M6800A와 Z-80 기반의 본체를 조립, 저가로 공급하며 학생층과 일반 회사원의 인기를 독점했다. 주로 이들이 공급한 것은 애플II와 SE 8001 복제품으로 한달에 50여대 정도를 판매했다.
이들은 국내 생산이 가능한 저항, 콘덴서, 기판 등은 국산부품을 사용하고 이외는 수입부품을 사용하며 조립에 필요한 부품을 조달했다. 당시 국산 대체가 가능한 컴퓨터 주변기기는 수입이 규제되고 있었기 때문에 프린터의 경우는 '무관통상', 즉 외국에 나가는 인편을 통해 구하거나 현지의 줄이 닿는 업체에서 소포로 보내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 경우 통관시 30~40%의 세금이 붙긴 했지만 충분한 수요가 있었던 덕에 짭짤한 재미를 보았던 것이다. 비공식 루트를 통해 비합법적인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고, 지적재산권이 엄연했던 제품을 복제했다는 점에서는 비난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PC산업에 일조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는 PC가 너무 고가여서 시장 수요가 형성되는데 한계가 있었다. 현재는 삼성전자를 비록한 대기업들이 국내 PC산업을 견인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중대형 컴퓨터를 외국에서 들여와 국내 공급하던 삼성이나 금성이 뛰어들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2024년 현재 PC시장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2023년 기준으로 500만대가 팔린 것으로 조사됐다. 지금 PC는 전통적인 스펙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PC로 진화 중이다.
<사진설명: 1981년 삼보전자(삼보컴퓨터)가 처음 생산한 퍼스널컴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