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25)- '꺾어진 초기 행정전산화'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근간으로 5대 국가기간전산망인 행정전산망·금융전산망·교육연구전산망·국방망·공안망의 틀이 갖추어진 것은 87년의 일이다. 이 법령에 따라 86년 5월 자금지원을 위해 한국통신진흥이 세워졌고, 87년 1월에는 전산망 감리 및 표준을 위해 한국전산원(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출범했다. 또 행정전산망 전담사업자로 한국데이터통신이, 금융전산망은 금융결제관리원, 교육연구전산망은 시스템공학센터(현 ETRI)가 지정됐다.
5대 기간전산망 가운데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어 추진했던 것은 역시 행정전산망이었다. 작은 정부 구현과 선진 경제사회 실현이라는 목표 아래 진행된 행정전산망은 5공화국의 대표적인 성과물로 간주되기도 했다. 한동안 행정전산망 기틀 마련은 5공화국의 3대 치적중 하나로 꼽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작은 정부 구현이라는 행정전산화는 실제로는 5공화국 이전에 이미 실체를 갖고 있었다. 즉 행정전산화 사업 추진이 시작된 것은 4공화국 말기인 1978년부터라는 얘기다. 당시 정부는 경제기획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공동으로 충청북도와 산하 시·군을 행정전산화 시범 도 및 시범 시·군으로 선정하고, 본격적인 통합기간망 구축에 나섰다. 이는 78년 2월 총무처가 확정 발표한 제1차 행정전산화 기본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제1차 행정전산화 기본계획은 78년부터 87년까지 10년간 5년 단위로 전국을 단일 정보권으로 하는 행정정보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일환에서 추진됐다. 1차적으로는 78년부터 82년까지 32개 정부기관의 99종에 이르는 중요 업무를 전산화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골자는 시·도 단위로 컴퓨터 공동이용을 위해 부분 전산통신망을 구성하고, 지방행정 업무의 전산화 차원에서 각 시·도에 전산센터를 설치한다는 것이었다. 공용 행정자료 DB를 구축하기 위한 광범위한 수요조사 계획도 포함돼 있었다.
2차로는 1차에서 기간 단위로 개발된 업무를 계열별로 통합해 군 단위까지 연결되는 전국적인 전산통신망을 구축하고, 분야별 행정자료를 단계별로 DB화한다는 것이 기본 골격을 이루었다. 1차계획의 성과에 따라 유동성을 두었지만, 2차계획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국을 단일 정보권으로 묶는 행정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계획들은 예산업무를 담당하는 경제기획원 예산국에서 담당했다. 행정정보 시스템 구축이 장기적으로는 정부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따라 기획원이 입안한 것이 기간망을 새로이 구축하고 통합 전산업무를 개발, 부처간 공동 이용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이를 공문서화한 것이 바로 총무처의 행정전산화 기본계획이었다.
총무처의 1차 5개년계획이 발표되자 기획원은 행정정보 시스템 구축에 앞서 78년 7월부터 시범사업에 착수한다. 시행착오와 예산상의 낭비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시범사업은 구체적으로는 행정정보 시스템에 필요한 기술, 제도적 지원 등을 연구하는데 초점이 모아졌다.
시범사업 수행자로는 국내 최고 수준의 전산시스템과 개발기술을 자랑하던 KIST 전산개발센터가 선정됐고, 사업 대상지역은 충청북도로 정해졌다. 당시 충북이 대상이 된 배경을 보면 행정전산화에 가장 열성을 보였던 이가 충북지사인 정종택(전 환경부 장관)이었고, 친분관계를 맺고 있던 이가 기획원 에산국장 강경식(전 국회의원)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범사업은 KIST 전산개발센터에서 연구책임자 안문석(전 고려대 교수), 실무책임자 신동필(전 시스템공학연구소장) 등을 비롯해 연구원 8명과 위촉연구원 9명, 자문위원단 8명 등 30명으로 프로젝트 추진팀이 구성돼 개발에 들어간다.
충북도청과 산하 시·군을 연결하는 행정정보 시스템 시범사업은 80년 초까지 계속된다. 79년 10·26 사태에도 사업은 지속됐고, 80년 초 최규하 대통령이 주재하는 월례보고에서도 추진과정은 계속해서 보고됐다. 그러나 80년 9월 5공 정부가 들어서며 상황은 역전되기에 이른다. 기획원 예산국장과 충북지사가 바뀌자 정부당국의 행정정보 시스템 구축 사업에 대한 열의가 사그라들었던 것. 81년부터는 실무부처인 내무부가 사업을 기피하며 사실상 행정전산화 기본계획은 중단되기에 이른다.
이와 달리 85년경부터 국가기간전산망 조정위원회의 5대 국가기간전산망 계획이 수면위로 급부상하기 시작한다. 90년대 초반까지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국가기간망 조정위원회는 하지만, 자세히 보면 78년 경제기획원이 예산절감을 위해 추진했던 행정정보 시스템 구축 계획을 확대 보완한 선에 머물렀던 것이다. 충북도청 시범사업 추진과정에서 얻었던 기술적인, 행정적인 노하우가 투영된 것은 물론이었다.
일례로 국가기간전산망 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대통령 비서실장을 앉힌 것은 충북도청 전례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다. 충북도청 행정정보 시스템 시범사업 추진 과정에서 관련 부처간 조정을 위해 실무책임자이던 신동필이 막판에 교체됐던 것을 거울로 삼아 사전 조율을 했던 셈이다.
당시 충북도청 행정정보 시스템 시범사업 중단은 이후 논란의 여지를 남긴채 역사속으로 사라져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이는 5공화국 이후 국가기간전산망의 일환으로 추진된 행정전산망이 기술적으로나 사업자 선정에서나 뒤탈이 많았던 것과는 달리 충북도청 시범사업은 기술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에 달했던 때문이다. 단편적인 예로 거주지에 상관없이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은 행정망 구축이 시작된 이후 근 10년이 넘어서야 가능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충북도청 시범사업에서 구현됐던 것이다.
5공화국의 이같은 정보산업 관련 실책으로 국내 행정전산화가 10년 이상 뒤쳐지게 됐다며 5공화국과 당시 핵심 브레인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사진설명: 정부가 행정전산화 10년 계획을 마련해 본격적인 행정전산화 작업에 나섫(1978년 2월 20일자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