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산업 역사 속 100대 이벤트

1960년대에 국내에 컴퓨터가 도입된지 어언 6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국내 디지털 역사 속에 가장 중요한 이벤트들 중 100가지 이슈를 골라 정리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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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2)- '민간 소프트웨어센터의 출현'

1970년대 자생적으로 태동한 국내 IT산업은 크게 양대 축을 이루며 성장해 왔다. 하나가 외국 업체들의 국내 진출에 따른 하드웨어 판매였다면, 또 다른 축은 소프트웨어 용역이었다. 종래 오랜 관습과 구태의연한 수작업에 파묻힌 한국기업은 전통적으로 기업의 자료 공개를 꺼렸다. 또 컴퓨터에 의한 업무처리 효과를 의심쩍은 눈으로 바라본 것도 사실이다. 당시 정보화 사회라고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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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1)- '반공 분위기 속 주민등록 전산화'

만 18세가 되면 발급되는 주민등록증. 13자리 번호와 지문을 통해 신분을 증명하는 주민등록증의 역사는 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내무부 경사이던 노연후씨가 미국 범죄관련 전문지 아이덴티피케이션을 우연히 접한 후 범죄감식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되면서였다. 68년 노연후가 작성한 '전국민의 지문 등록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당시 유재덕 총경의 허락을 받은 다음 내무부 치안참모회의에서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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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0)- '정부기관들의 전산화 열풍'

1970년 경제기획원 예산국이 KIST 전산실의 CDC-3300과 터미널을 연결, 예산의 EDPS화를 시행하는 때를 전후해 각 정부기관에서는 앞다투어 컴퓨터 도입을 계획하게 된다. 행정의 효율화, 과학화라는 기치 아래 도입된 컴퓨터가 각 부서 업무에 활력소를 제공하고 행정의 현대화 과정에 긴요한 수단으로 여겨진 것이다. 경제기획원 예산국이 컴퓨터 혁명의 기수로 등장한 것은 어찌보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보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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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9)- '원거리 데이터 통신의 효시'

데이터 통신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은 197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산업무의 EDPS를 위해 경제기획원 예산국과 KIST 전자계산실간에 이루어진 통신이 그 효시다. 당시로서는 국내 최대 용량이었던 서울 홍릉 KIST 전산실의 CDC-3300과 광화문에 위치했던 경제기획원 예산국의 배치터미널인 CDC 200 UT가 체신부의 전용선과 모뎀 장비로 접속됐던 것이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컴퓨팅 파워는 공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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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8)- '컴퓨터를 이용한 중학교 무시험 추첨'

대학입학 예비고사 채점 전산화는 교육행정과 컴퓨터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었다. 그러나 교육행정 분야에 컴퓨터가 먼저 사용된 것은 대학 예비고사보다 1년 앞서 시행된 1970년 서울시 중학교 무시험 추첨이었다. 중학교 무시험 추첨에 컴퓨터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69년부터 거론돼 왔다. 한국전자계산소가 문교부와 서울시 교육위원회에 제의한 것으로, 시행을 두고 얼마간 옥신각신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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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7)- '컴퓨터와 한글의 접목'

외국에서 컴퓨터를 들여오는 것이 관건이던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국내 IT산업은 본격적인 적용기를 맞게 된다. 70년대의 개막은 컴퓨터로 한글을 처리할 수 있는 라인프린터 개발 및 대량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OCR/OMR(Optical Character/Mark Reader: 광학카드판독기)의 도입으로 시작됐다. 1970년을 전후해 KIST와 IBM코리아간에 치열하게 펼쳐진 한글 라인프린터 개발 경쟁은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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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6)- '1960년대 사무자동화 열풍'

1960년대말 컴퓨터 도입에 도화선을 제공한 것은 사무처리 능률 향상을 위한 사무자동화였다. 일각에서 사무자동화에 편승한 컴퓨터 활용이 차츰 표면화되는 계기를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노동력이 풍부하고 값싼 임금의 수작업이 만연해 있던 시기 일이 밀리거나 시급한 경우에는 인해전술로 해치워도 됐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사무자동화에 눈떴다는 것은 경영 혁신이나 업무처리의 구습을 타파하는 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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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5)- '외국 컴퓨터 회사들의 국내 시장 진출'

1960년대 후반 IBM에 이어 후지쯔와 CDC가 국내 들어오며 한국 컴퓨터사는 새로운 장을 열어 나간다. 국내 컴퓨터 역사에서 이들 외국 컴퓨터 회사들은 큰 역할을 차지한다. 컴퓨터가 원래 외국에서 들여온 제품인데다, 세계 컴퓨터역사 역시 이들 메이커의 기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시장 지배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경제기획원에 IBM 1401이 설치된 시기와 때를 같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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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4)- '과학기술처 발족'

1966년에서 1967년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본격화된 시점이다. 과학기술진흥법의 모태가 된 과학기술진흥 5개년계획이 수립되는데, 이는 정부가 발표한 첫 과학기술 정책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경제기획원 주도로 이루어진 일련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의지는 과학기술처 발족으로 가시화됐다. 과기처 발족은 1965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의 미국 방문 시 존슨 대통령과 한미 양국 정부의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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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3)- '국내 컴퓨터 원조 PCS'

국내에 첫 발을 들인 '전자계산조직 도입 1호'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경제기획원의 IBM 1401이 후지쯔의 파콤 222(FACOM 222)를 앞서 시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959년과 1961년에 개발된 IBM 1401과 후지쯔의 FACOM 222는 트랜지스터를 주기억장치로 사용하는 2세대 컴퓨터에 해당한다. 그러나 PCS(Punch Card System)를 단순한 통계기구가 아니라, 컴퓨터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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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2)- '화마로 사라진 국산 컴퓨터'

한국 컴퓨터사의 뿌리가 이 땅에 근원을 두고 있던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은 미천하고, 제조능력이 없었던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했다. 1960년대 남미나 북미, 호주 등으로 이민의 길을 떠날 때 컴퓨터는 거꾸로 이 땅에 이민온 것이다. 컴퓨터 생산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이고 보면 자생력을 키우기란 처음부터 지나친 욕심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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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1)-'전자계산기 도입'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토인비는 말했다.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IT산업은 어느날 갑자기 이만큼 성장한 게 아니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선구자들이 그들의 영혼을 투자한 결과물들이 누적된 것이다. 수많은 밤을 세우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해외 현지에서 고생하면서 쌓아온 결과물들이 바로 오늘날 한국의 IT산업 역사를 세우는 초석이 됐다. 초창기 단순 컴퓨터 도입에서